지난달 21일 강원 원주 태장공단에 자리 잡은 에스에이치엘(SHL) 안으로 들어서자 1만㎡(약 3000평)에 이르는 공장 부지를 가득 채운 연두색 드럼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회사 김종성 회장은 “SHL은 국내 1호 윤활유 수출 기업”이라며 “3~4층으로 쌓인 200리터(L)들이 드럼통 개수는 3000개를 넘는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강원도 원주 태장공단에 있는 SHL에서 김종성 회장이 200리터(L) 윤활유 드럼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1년 창업해 50년 넘게 윤활유 외길을 걸어온 김 회장은 "토종 윤활유 기업이라는 자부심으로 2030년 매출 10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원주=박상훈 기자

김종성 회장이 1971년 삼화유업상사로 시작한 SHL은 금속을 압착해 얇게 만들 때 쓰는 압연유, 금속 소재를 자르고 깎을 때 쓰는 절삭가공유, 자동차 엔진오일 같은 각종 윤활유를 생산한다. 특히 알루미늄 가공 과정에서 생기는 열을 식히고 마찰을 줄여 판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압연유는 SHL의 첫 제품이자 김 회장이 ‘효자’로 꼽는 간판 상품이다. 압연유를 이용해 생산된 알루미늄 포일은 포장지와 캔에 널리 쓰이고 최근에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에도 들어간다. SHL은 국내 윤활유 시장 점유율 15%로, 업계 빅3로 꼽힌다. 특히 품질 기준이 높은 자동차 차체, 배터리 케이스용 시장에서는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창업주 김 회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대학 때까지 배구선수로 뛰다 대한석유공사(SK이노베이션의 전신) 여자배구팀 코치를 지냈다. 그는 “수입 윤활유를 판매하는 특수제품과 소속이었는데 시합이나 연습이 없을 때면 사무실에서 윤활유 관련 기술 서적을 보며 틈틈이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 창업 기회를 잡았다. 막 가동을 시작한 대한은박지에서 석유공사에 압연유 국내 생산을 타진했고, 그는 ‘사업이 되겠다’는 생각에 코치직을 그만두고 창업에 도전했다.

공장 없이 설계만 하는 반도체 팹리스 회사처럼, 창업 초기엔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제품 제원을 바탕으로 생산은 외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김 회장은 “품질은 외국산과 비슷한데 가격은 월등히 싸고 재고 관리도 편하니 롯데알미늄 등 외국산을 쓰던 큰 업체들에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SHL은 1995년 국내 윤활유 업체 최초로 수출에도 나섰다. 김 회장은 “국내 대형 정유사뿐만 아니라 중소 윤활유 업체들도 외국 기술과 자본을 들여와 사업을 하다보니 해외 수출이 어려웠다”며 “우리는 자본도, 기술도 토종이라 아무 제약 없이 해외 시장 진출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인도네시아 시장을 석권했고 이어 중국·일본·베트남·태국 등으로 수출국을 확대했다. 이라크에서는 아예 윤활유 공장 건설을 턴키(일괄 수주)로 SHL에 맡겼다.

김 회장은 “설비마다 특성에 맞춰 제품을 생산·납품하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도 우리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윤활유 상태를 확인해 교체 여부를 알려주고,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기술 지도도 한다”고 했다.

SHL은 압연유 시장을 넘어, 반도체·태양광 웨이퍼 가공유, 타이어 코드 제조용 윤활유 시장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김 회장은 “2030년 매출을 지금의 3배인 1000억원으로 확대하며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