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작년10월 18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다목적홀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1.10.18./뉴시스

국내 에너지 전문가 10명 중 8명(76.7%)은 “차기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계승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비현실적이어서,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 부담과 경제·산업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현재 시나리오대로라면 연 19.7%씩의 전기료 인상도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3월 대선 이후 전기 요금을 10.6% 인상한다고 밝혔는데,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맞추려면 인상 폭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일보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동으로 한국에너지학회, 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 한국자원공학회, 한국자원경제학회, 한국원자력학회 소속 전문가 30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0)로 하겠다는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0% 이상 감축하겠다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발표했다.

◇전문가 60% “2030 NDC 달성 가능성 낮아”

전문가들의 절반 이상은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와 2030 NDC 모두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특히 2030 목표에 대해 더 부정적이었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응답이 2050 목표는 33.3%였지만, 2030 목표는 46.7%였다. 앞으로 8년 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할 만한 급격한 기술 발전이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탄소 중립 대상 분야 6개(에너지 전환·산업·건물·수송·농축수산·폐기물) 가운데 가장 현실성이 떨어지는 분야로 에너지 전환(44.4%)과 산업(44.4%)을 꼽았다. 에너지 전환 분야에선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비율은 58.3%로 비현실적으로 높게 잡은 반면, 현실적인 대안인 원자력은 11.1%로 너무 낮게 잡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은 2050년까지 연간 2억940만t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 1위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제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상위 20위 기업이 모두 공장 가동을 멈춰야만 달성이 가능한 비현실적인 수치다. 이에 따른 가장 큰 우려 사항으로 전문가들은 ‘경제 전반과 고용에 타격 우려’(37.5%)와 ‘천문학적 비용’(31.3%)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한 보완 방안으로 ‘원자력 발전 비율 상향 등 에너지 전환 분야 재검토’(69.2%), ‘2030 목표치 하향’(15.4%), ‘산업 부문 배출량 감축 부담 완화’(11.5%)를 꼽았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 차기 정부에 계승하지 않아야”

전문가들은 탄소 중립 시나리오 수립 과정에 전문가 참여나 의견 수렴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매우 충분하지 않았다’(73.3%), ‘비교적 충분하지 않았다’(16.7%)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비교적 충분했다는 10%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탄소 중립 시나리오 진행을 위해 전기료가 인상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전문가 전원이 인상될 것이라고 답했다. 인상률은 연간 19.7%(응답 평균)로 예상했다.

송재형 전경련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팀장은 “탄소 중립 시나리오가 본격 시행되면 급격한 전기료 인상으로 산업 경쟁력 저하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차기 정부는 전문가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중·장기 에너지 정책과 새로운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 응답자: 한국에너지학회 임종세·이상학·오시덕·안용모·김성수·김명환·박종배·유동진·최기련·조경엽, 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 유동헌·강석환·장태선, 한국자원공학회 신성렬·정명채, 한국자원경제학회 박호정·원두환·정우진, 한국원자력학회 천진식·이현철·강경호·정재호·윤병조·문주현·김동억·심형진·허균영·장창희·정재준·김교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