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9일 30대 반도체 설계 전문가, 40대 인공지능(AI) 개발자, 중국 시장 개척에 앞장선 여성 마케터, 미국에서 갤럭시 스마트폰 매출을 견인한 외국인 등을 대거 발탁하는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부사장 68명, 상무 113명, 펠로(부사장) 1명, 마스터(상무) 16명 등 총 198명이 승진했다. 전체 승진자 규모는 지난해(214명)보다 소폭 줄었지만 올해부터 부사장과 전무 직급이 통합되면서 부사장 승진자는 작년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30·40대 임원 발탁이 두드러졌다. 승진자 가운데 40대 부사장이 10명, 30대 상무가 4명 탄생했다. 지난 7일 실시한 사장단 인사에서 대표이사를 한꺼번에 바꾼 데 이어 임원 인사에서도 세대교체를 가속화한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직급·연차와 관계없이 성과를 내고 성장 잠재력이 있는 인물을 과감하게 발탁하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김찬우 부사장
박찬우 부사장

◇40대 부사장, 30대 상무 발탁

삼성전자는 이번 임원 인사에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 모바일 반도체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분야의 젊은 리더들을 대거 전진 배치했다. 부사장 승진자 가운데 최연소인 김찬우(45) 세트(완성품) 부문 삼성리서치 스피치 프로세싱랩장은 구글·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음성 처리 기술 전문가다. 음성으로 스마트폰뿐 아니라 에어컨·청소로봇 등 생활 가전까지 컨트롤하는 기술 개발에 기여했다. 생활가전사업부 IoT 비즈그룹장 박찬우(48) 부사장은 구독 서비스를 적용한 스마트 오븐 큐커를 출시해 주방을 중심으로 한 홈IoT 사업을 개척했다. 올해 최연소 승진자인 반도체(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 박성범(37) 상무는 모바일 반도체 설계 전문가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9년 만에 임원이 됐다. 중앙처리장치(CPU)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미국 반도체 기업 AMD와 GPU(그래픽처리장치) 칩을 공동 개발한 점을 인정받아 발탁 승진했다.

박성범 상무

삼성 안팎에서는 ”삼성이 수년 내에 ‘40대 최고경영자(CEO)’가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은 올해 부사장 승진자(68명)가 지난해(31명)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달 말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안을 반영해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통합하면서 ‘미래 CEO 후보군’인 부사장급 임원의 규모가 예년보다 커졌다. 30~40대 상무급 임원이 전무를 건너뛰고 부사장을 거쳐 CEO로 발탁될 길이 열린 것이다.

양혜순 부사장

삼성은 이번 인사에서 매년 10명 안팎이던 외국인·여성 승진 규모도 17명으로 늘렸다. 여성 승진자는 12명, 외국인 승진자는 5명이다. 맞춤형 가전 브랜드인 비스포크를 글로벌 시장에 각인시킨 양혜순 생활가전사업부 CX팀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중국 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매출 성장에 기여한 오양지 중국총괄 화북영업팀장은 상무로 발탁됐다. 코로나 속에서 실적 상승에 기여한 북미 지역에서도 승진자가 다수 나왔다. 세트부문 미국 법인 주드 버클리 부사장은 올해 갤럭시Z플립3를 비롯해 미국 시장에서 삼성 스마트폰 매출을 크게 높인 점을 인정받았다.

주드버클리부사장

◇전자 계열사도 첫 40대 부사장

세대교체 바람은 삼성디스플레이·SDI·SDS·전기 등 전자 계열사에도 강하게 불었다. 삼성의 모든 전자 계열사에서 처음으로 40대 부사장이 나왔다. 능력 있는 젊은 인재를 중용하겠다는 ‘삼성형 패스트트랙(Fast Track)’이 삼성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날 중소형디스플레이사업부 모듈개발팀장 최열(46) 부사장을 발탁했다. 삼성SDI는 차세대 전지 소재 개발을 주도한 최익규(48) 상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삼성전기는 김종한(48)·조정균(47) 부사장을 선임했고, 삼성SDS도 권영준(48)·서호동(49) 부사장을 발탁했다.

삼성화재 사장에 홍원학 내정

한편 삼성그룹 일부 금융계열사들은 10일 사장단 인사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화재의 최영무 사장이 퇴진하고 이 자리에 자동차보험본부장을 맡고 있는 홍원학 부사장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자산운용도 심종극 대표가 물러나고 삼성증권 서봉균 전무가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