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7일 김기남(63)·고동진(60)·김현석(60) 대표이사 3명을 경영 일선에서 퇴진시키고 TV 등 세트 부문의 한종희(59) 부회장과 반도체 부문의 경계현(58)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로 삼성전자의 트로이카 체제는 9년 만에 투톱 체제로 바뀌었다. 이뿐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직원들의 직급별 체류 기간을 전면 폐지해 능력만 있다면 30대 임원, 40대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인사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조만간 단행할 신규 임원 인사에서는 30대 임원 발탁 등 더 파격적인 인적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을 비롯해 SK·LG그룹 등 올해 대기업 임원 인사의 가장 큰 화두는 세대교체다. SK그룹의 신규 임원 중 30~40대가 절반 이상이고, LG그룹은 40대 비율이 62%에 달했다. 현대차 그룹도 최근 사상 처음으로 성과가 좋은 사무·연구직 직원들에게 500만원의 특별 포상금을 지급하는 ‘탤런트 리워드’ 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연말 임원 인사에서도 성과를 바탕으로 젊은 세대를 대거 발탁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공서열보다는 글로벌·디지털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세대를 적극 기용하는 것이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이른바 ‘3세 경영’ ‘4세 경영’ 시대로 본격 접어들고 있는 상황까지 겹쳐, 비교적 젊은 오너들이 각자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3, 4세 오너 경영인들은 실적과 능력 중심의 실리콘밸리식 성과주의를 도입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면서 “그런 파격적인 변화가 없으면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SK그룹과 LG그룹은 최근 임원 인사에서 각각 133명, 132명의 신규 임원을 발표했다. 최근 3~4년 동안 가장 큰 폭의 임원 승진 인사다. SK와 LG 측은 “사업 실무를 책임지는 신규 임원을 대거 발탁해 신사업에 속도를 내면서 미래 CEO 후보군을 확대하겠다는 포석”이라고 밝혔지만 신규 임원 수만큼 기존 임원이 나가는 것을 감안하면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올 연말 SK그룹 인사에서는 1975년생 사장이 탄생했다. 지난해 인사에서 1974년생인 추형욱 SK㈜ 투자1센터장을 SK E&S 사장으로 발탁한 데 이어, 올해는 1975년생인 노종원 부사장을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 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지난달 인사에서는 1970년생인 유영상 부사장을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SK그룹은 1970년대생 CEO 출현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그룹 세대교체 흐름과 맞물려 진행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78년생 구광모 회장이 이끄는 LG그룹은 올해 신규 임원 중 40대 비율이 62%에 달했다. 또 이번 인사로 LG그룹 전체 임원 가운데 1970년대생 비율(52%)은 지난해 말(41%)보다 대폭 증가해 절반을 넘겼다. 지주회사인 ㈜LG 주요 팀장들도 모두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생 임원들로 교체했다.
한화·코오롱그룹에서도 세대교체가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있었던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임원 인사에서 상무 승진자가 3명 배출됐는데, 모두 1970년대생이어서 화제가 됐다. 기존 상무들이 대부분 1960년대생인 것을 감안하면 연령대가 대폭 낮아진 것이다. 코오롱그룹도 지난 10월 임원 인사에서 신임 상무보 21명 중 40대 18명(85%)을 발탁했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롯데그룹도 최근 경영 위기론이 대두되는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순혈주의를 깬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호텔롯데 대표이사 사장으로 안세진(52) 모건스탠리 PE(사모펀드) 출신을 영입했고, 롯데쇼핑의 백화점 사업부 신임 대표로는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56) 롯데GFR(패션사업) 대표를 선임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30대 그룹 임원 중 X세대(1969∼1978년 출생자) 이하 임원은 46.8%를 차지해 절반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년 전 2019년 3분기 때 27.3%보다 20%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박주근 대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세대교체와 산업생태계 변화에 대응한 신사업 투자 확대 등의 움직임 속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 임원들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앞으로 3~5년 동안은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