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CJ ENM이 지난달 19일 미 할리우드의 제작사 엔데버 콘텐트를 1조원에 인수하고 콘텐츠 부문의 물적분할을 발표한 뒤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달 19일 18만400원에서 2일 13만5000원으로 25% 넘게 떨어졌다. CJ ENM은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콘텐츠 제작 부문을 물적분할해 자회사(가칭 ‘스튜디오 타이거’)를 만들 예정이다.

CJ ENM은 아카데미 수상작 ‘라라랜드’(사진 위쪽)를 제작한 엔데버콘텐트를 인수해 글로벌 콘텐츠 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반면 CJ ENM의 자회사가 제작한 tvN 드라마 ‘지리산’(아래쪽)은 300억원을 들인 대작임에도 시청률이 부진하다. / 판씨네마 CJ ENM

아카데미 수상작 ‘라라랜드’로 유명한 엔데버 콘텐트 인수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CJ ENM 주가가 하락한 이유는 업계와 시장에서 콘텐츠 부문이 분리된 후 CJ ENM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CJ ENM에서 핵심 사업인 콘텐츠 부문을 떼어내면 성장 동력이나 전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2의 스튜디오 드래곤 만들기

CJ ENM에 따르면, 신설 법인 스튜디오 타이거는 앞으로 예능,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을 계획이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가 확산하고 한국에서 제작한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CJ ENM은 지난 5월 향후 5년간 5조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콘텐츠 제작 영역을 분리해 제작사를 설립하면 독립적인 제작 환경이 만들어지고 의사 결정이 빨라진다는 장점이 있다. 물적분할이 이뤄지면 CJ ENM은 스튜디오 드래곤, 엔데버 콘텐트, 스튜디오 타이거를 포함해 콘텐츠 제작사 세 군데를 자회사로 두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CJ ENM은 디즈니 같은 멀티 스튜디오를 구상하고 있다. 디즈니도 산하에 마블, 픽사 같은 스튜디오를 여러 개 두고 각각의 역량을 강화해왔다”고 했다.

CJ ENM은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로 분리한 뒤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16년 드라마 제작 부문을 물적분할해 스튜디오 드래곤을 설립하고 이듬해 상장시켰다. 지난해 10월 물적분할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티빙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물적분할 이후 급성장했다. 티빙 가입자는 지난해 70만명에서 지난 3분기 182만명으로 급증했고, 스튜디오 드래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1.1% 늘었다.

문제는 CJ ENM이 물적분할을 거듭하면서 회사의 역량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CJ ENM은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엔터테인먼트 부문과 홈쇼핑 CJ온스타일을 운영하는 커머스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물적분할이 예정된 콘텐츠 제작 부문을 빼면 tvN이나 OCN처럼 콘텐츠 유통을 담당하는 유선방송 채널과 커머스만 남는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CJ ENM의 성장을 견인한 핵심 사업들이 물적분할로 빠져나가는 데다 남아있는 커머스나 채널 사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한 우려가 주가에 반영됐다”고 했다.

◇잇단 물적분할에 모회사 경쟁력 약화되나

영화·드라마 제작 업계에선 CJ ENM이 제작 부문을 분할하는 것은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 거둔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CJ ENM은 2018년 CJ오쇼핑이 CJ E&M을 흡수합병해 출범했다. 합병 이듬해인 2019년 매출 3조원을 넘어섰지만 코로나가 닥친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3.9% 감소했다. 게다가 드라마 지리산처럼 300억원을 들이고도 흥행에 실패하는 사례가 나오자 CJ ENM이 돌파구를 찾으려고 물적분할로 콘텐츠 제작 부문을 독립시키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CJ ENM은 인터넷TV(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와 프로그램 사용료를 두고 소송까지 불사할 정도로 콘텐츠 사업 돌파구 마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가의 연속 하락에서 보듯이 시장의 반응은 아직 냉담하다. CJ ENM과 CJ온스타일이 합병한 지 3년 만에 다시 분할에 나서자 한 주주는 주식 관련 커뮤니티 게시판에 “2018년 합병 당시 콘텐츠와 커머스를 결합시킨 ‘미디어 커머스’로 시너지를 내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적분할

기업 일부를 분할하면서 기존 법인(모회사)이 신설 법인의 지분을 모두 소유하는 방식이다. 모회사와 기존 주주들이 지분 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인적분할과 달리, 기존 주주에게 지분을 나눠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