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5년 만에 떠난 미국 출장길에서 글로벌 주요 파트너사 대표와 잇따라 만나 협업관계를 강화하고 바이오, 차세대 이동통신, 메타버스, AI 등 미래전략사업을 논의하며 미래 준비에 본격 나섰다. 24일 귀국한 이 부회장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은 출장이었다”면서도,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와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삼성전자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번 출장에서 체감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 대표 CEO 줄줄이 만난 이재용
이 부회장은 이번 미국출장에서 나스닥 시총 2위(마이크로소프트)·3위(알파벳·구글모회사)·4위(아마존) CEO들과 별도 회동을 가졌다. 지난 22일(현지 시각) 구글 본사에서 순다르 피차이 CEO(최고경영진) 등을 만난 이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에 대한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구글이 자체 설계한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올 연말 생산 예정인 스마트폰 ‘픽셀 시리즈 6′에 탑재하기로 하고 삼성전자에 칩 생산을 맡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가운데, 이 부회장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두 회사의 협업관계가 한층 공고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업계에서는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운 삼성전자로서는 이른바 ‘안드로이드 동맹’으로 불리는 구글이 ‘우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 부회장은 앞서 20일에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만나 반도체, 모바일은 물론 메타버스 등 차세대 기술 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지난 2018년에도 이 부회장은 방한한 나델라 CEO와 만나 AI(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와 관련한 양사의 전략을 공유하고 공조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어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와도 별도 회동을 갖고, AI·클라우드 컴퓨팅 등 차세대 산업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아마존은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차세대 화질 기술인 ‘HDR10+’ 진영에 참가하고 있으며, 삼성 스마트TV에 AI ‘알렉사’를 제공하는 등 기술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세계 최고 테크기업들 뿐 아니라 바이오 회사, 이동통신 회사와도 협력관계를 강화했다. 이 부회장은 앞서 16일에는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을 만나 최근 진행된 코로나 백신 공조와 앞으로 바이오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또 17일에는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의 본사를 방문해 한스 베스트베리 CEO 등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부회장과 베스트베리 CEO는 지난 2010년 스페인에서 열린 모바일 전시회 MWC에 함께 참석한 것을 계기로, 10년 이상 친분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버라이즌과 7조9000억원 규모의 5G(5세대 이동통신) 공급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도 이 부회장은 베스트베리 CEO와 연쇄 화상회의를 통해 직접 영업에 나서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이번 방미 일정은 정부가 가석방의 이유로 제시했던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국가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 개척”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미국 동서부를 횡단하는 강행군을 이어가며 바이오와 5G, AI 등 삼성의 ‘미래 성장사업’을 집중적으로 챙겼다. 미국 출장 마지막 행선지로 실리콘밸리에 있는 반도체와 세트 연구소인 DS미주총괄(DS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잇따라 방문해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이 부회장은 이곳 연구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래 세상과 산업의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우리의 생존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 뒤 혁신 노력에 가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특히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이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가자”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삼성을 가능케 했던 ‘초격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의미로, ‘뉴 삼성’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통해 신성장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구글, MS, 아마존, 버라이즌 등 다양한 사업파트너들과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가동하면서 ‘뉴삼성’을 향한 변화와 새로운 도약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