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주기 추도식이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가족 선영에서 열렸다. 대규모 행사 대신 간소하고 소탈하게 갖자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됐다. 이날 추도식에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에 설치된 이건희 회장의 흉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삼성측은 “생전에 ‘인재제일’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을 써 온 이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창조관에 흉상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은 이날 별도의 공식 행사는 열지 않았지만 사내 블로그에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해 임직원들이 추모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했다. 또 게시판에는 ‘세상을 바꾼 거인, 고 이건희 회장님을 그리며’라는 제목으로 1주기 추모 영상과 신경영 특강 영상을 공개했다.
한국 재계의 대표적 경영인이었던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은 지 6년 5개월 만이었다. 1942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 여사의 3남5녀 중 3남으로 태어난 고인(故人)은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26년 넘게 그룹을 이끌었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 1등 품질주의로 삼성전자를 ‘세계 1위 전자회사’로 이끌었다. 1992년 D램 반도체가 처음으로 점유율 세계 1위를 기록했고, 평판TV(2006년), 스마트폰(2011년) 등도 잇따라 1위 자리에 올랐다. 현재 삼성의 글로벌 1위 제품은 20개에 달한다. 세계 경제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변방 한국 기업이 글로벌 1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현실화한 혁신적 경영인이었다.
이 회장은 ‘2세 경영자’이지만, 창업보다 더 어렵다는 수성(守成)을 뛰어넘어 ‘제2의 창업’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전자 임원들을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 경영, 디자인 경영 등으로 대도약을 이뤘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삼성그룹 매출은 2018년 387조원으로, 영업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늘었다. 그룹 시가총액도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급성장했다. 이 같은 실적 뒤에는 위기 때 기회를 찾고 남들이 기회라고 할 때 위기에 대비한 이 회장의 리더십이 있었다.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며 ‘인재경영’을 강조한 이 회장은 1995년 학력 제한을 폐지한 대기업 공채를 국내 처음으로 실시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말년에는 각종 수사와 재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고, 한때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기도 했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의혹에서 촉발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회장 별세 이후 유족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사회환원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민의 ‘인간 존중’ 철학을 이어 받아 감염병 극복 및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 등 의료공헌에 1조원 기부했고, 한국 미술계 발전을 위해 고인이 평생 모은 미술품 2만 3000여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인왕제색도를 포함한 지정문화재 60점 등 고미술품 2만1600여점,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국내외 대표작가들의 근대작품 1488여점을 기증했다. 지방미술관에도 143점을 기증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열린 이건희 특별전은 큰 관심을 끌며 수만 명의 관람객들이 관람했다.
12조원으로 알려진 천문학적인 상속세 규모는 재계에서 지금도 이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역대 최고 수준으로 유족들은 이를 내기 위해 대규모 금융권 대출을 받았다. 대출만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최근 홍 전 관장과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삼성전자, 삼성SDS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한 재계 인사는 “이들은 국내 대기업 총수 일가 중 최초로 신탁계약을 통해 매각을 단행해, 고가매각 논란을 원천차단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