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심장부터 싹 바뀔 겁니다.” 7일 오전 배상민(49) 롯데 디자인경영센터 센터장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창가에 서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의 사무실은 롯데월드타워 18층에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집무실과 같은 층에 위치했다. 전면이 통유리창인 사무실에선 롯데백화점 잠실점과 롯데호텔 월드점, 롯데월드와 롯데마트가 석촌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배 센터장은 “잠실이야말로 롯데가 가장 애정을 쏟아온 점포가 한데 모인 곳이지만, 오랫동안 디자인 혁신을 하지 못해 올드하게 보인다. 이곳부터 전부 바꿔보자는 게 신동빈 회장의 의지”라고 했다.

지난 7일 서울 잠실에서 만난 배상민 롯데 디자인경영센터장은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이 '거화취실(去華取實·화려함은 버리고 실리를 취한다는 뜻)'이라는 얘기를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요즘 세상이 원하는 혁신적인 가치를 담아낸 말 아닌가요?(웃음)." /장련성 기자

◇“롯데의 심장부터 바꾼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롯데지주 산하에 디자인경영센터를 신설하고, 센터장(사장)으로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롯데그룹이 외부 인사를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의 디자인 경영 혁신을 위해 배 교수를 직접 영입했다는 후문이다. 배 센터장은 27세에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뉴욕파슨스디자인스쿨 교수가 된 인물. 뉴욕에서 자신의 디자인회사를 세워 코카콜라·P&G 등 글로벌 기업 제품과 로고(CI)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2005년엔 카이스트(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레드닷·iF·IDEA·굿디자인 등 세계 4대 디자인대회에서 40개가 넘는 상을 받았다.

배 센터장이 신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올해 초다. “밥 한번 같이 먹자”는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신 회장은 “롯데 디자인이 어떠냐”고 물었다고 했다. “‘솔직히 별로’라고 답했더니 신 회장이 ‘나도 동감한다. 다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웃음).”

신 회장은 이후 배 센터장을 사내 강연에 초청했다. 비대면으로 이뤄진 강연에서 배 센터장은 롯데 디자인의 문제점을 묻는 사내 직원들의 질문에 서슴없는 비판을 들려줬다고 했다. “롯데 디자인은 통일된 언어로 조직된 것 같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것은 다 갖다 놓았지만 전체적인 조화는 엉망이다,” “매출만 신경 쓰다 보면 디자인을 놓친다” 같은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배 센터장은 “당시 디자인팀 직원 몇 명만 듣는 줄 알고 신랄하게 말했는데, 알고 보니 롯데그룹 임원단이 생중계 영상으로 다 듣고 있었다더라”고 했다.

배 센터장은 이후 신 회장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수차례 거절했다고 했다. “솔직히 다른 기업에서도 영입 제안이 많이 왔지만 전부 거절했던 터였다. 하지만 신 회장과 이야기하면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하고 싶어 하는 진심을 느꼈다.”

신 회장이 배 센터장에게 주문한 첫 과제는 잠실에 한데 몰려 있는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 롯데월드를 완전히 새롭게 개혁하라는 것이다. 배 센터장은 “20~30년 후에도 낡지 않을 메가 트렌드를 보여주겠다. 카이스트 연구소와도 지속적으로 협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모두를 포용하는 ‘인클루시브 디자인’ 하겠다

올해 말까지 디자인경영센터 인력을 30명가량 충원해 조직을 완성하고, 내년 초부터 디자인 혁신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롯데그룹의 편의점 ‘세븐일레븐’, 커피숍 ‘엔제리너스’ 등도 디자인경영센터를 통해 새 옷을 입을 전망이다.

배 센터장은 “미국 유통업체 ‘아마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백화점이나 호텔은 돈 많은 고객을 위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롯데는 반대로 가겠다”고도 했다. 소비자 누구나 매장에 들어서면 자신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준비했다고 느끼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배 센터장은 “어린이, 노인, 장애우는 물론이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디자인 설계를 보여주겠다. 첫 인상은 화려하고 고급스럽지만 그 안에 감동적인 디테일을 숨겨놓은 디자인, 차원이 다른 디지털 플랫폼을 눈으로 구현한 4차원 디자인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