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한수 CBC그룹 한국·북미 대표는 지난 4일 인터뷰에서 “질병에는 국경이 없고, 약에도 국경이 없다”며 “R&D 경쟁력이 높은 한국 바이오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좀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장련성 기자

GS그룹은 지난 8월 국내 1위 보툴리눔 톡신(일명 보톡스) 휴젤 인수에 참여하면서 의료바이오산업으로의 본격 진출을 알렸다. 1조7000억원 규모 인수전을 주도한 건 싱가포르 CBC그룹이 주축이 된 CBC컨소시엄이었다. CBC는 운용기금 규모만 약 5조원(45억 달러)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 바이오·의료사업 전문 투자기업으로, 휴젤 인수는 한국 기업에 대한 CBC의 첫 투자였다.

한국계 경한수(마이클 경·47) CBC그룹 한국·북미대표는 인수전의 알려지지 않은 주역이었다. 그는 “휴젤을 비롯한 한국 기업의 R&D(연구개발)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더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야한다”며 “우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세계적인 회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휴젤에 큰 규모로 투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 대표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 간 이민 1.5세다. 미 코넬의대에서 의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록펠러대학교,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신경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하버드 경영대 석사 과정까지 마친 그는 미 신약개발업체 캐털리스트바이오사이언스 회장, 국내 바이오기업 제넥신 대표 등을 맡았다. 바슈롬·일라이 릴리 등 세계적인 제약사와 삼성바이오로직스, 녹십자 등에도 자문을 했다.

의사에서 투자가로 변신한 경 대표는 “외과의사는 수술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1년에 500명 정도의 환자를 살리지만, 훌륭한 바이오기업을 발굴·투자해 좋은 약을 만들면 수천·수만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일을 할 때나 그만 둔 뒤에도 내 인생의 목표는 ‘환자를 도와주는 것’으로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경 대표는 “이번 휴젤 인수로 한국기업이 미국·유럽 바이오 시장에서 해외 합작사업이 직접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R&D뿐 아니라 해외 사업까지 잘하는 새로운 바이오산업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휴젤은 지난해 중국 정부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았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내년 초까지 판매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간 한국 바이오기업은 해외 진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외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때 합작사를 만드는 등 해외 파트너사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경 대표는 “휴젤 인수를 통해 그와 다른 성공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휴젤 인수는 CBC의 첫 한국 투자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GS와 함께 휴젤을 인수한 이유에 대해 그는 “GS는 CBC그룹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한 적이 있어 서로 신뢰관계가 있고 업계 평판도 좋다”며 “특히 GS그룹은 그동안 의료바이오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바이오산업에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질병에는 국경이 없고, 약에도 국경이 없다”며 “더 많은 한국기업들이 해외에서 인정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