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작업장 경남 함안군의 한 조선 기자재 업체 작업장이 텅 비어 있다. 최근 국내 조선 업체들이 연이어 수주에 성공하고 있지만,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 협력 업체들은 경영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업체의 부품 발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지난 31일 경남 함안군의 A조선기자재업체. 총 3개 동의 공장 안에선 직원들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3개 공장 모두 절반 이상씩 비어 있었다. 공장 가동률이 50%도 안 된다는 얘기다. A사 관계자는 “100명이 넘던 직원이 60여 명대로 줄었다”며 “그나마 우리 회사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올해 수주 물량이 크게 늘면서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 업체들의 비었던 독들은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조선 산업 생태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소 기자재업체들은 호황과 불황 사이 보릿고개에 허덕이고 있다.

부산 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이 최근 지역 회원 업체 105사를 대상으로 매출 현황 및 전망을 조사한 결과, 2020년 매출이 그 전해에 비해 10~50% 감소한 업체가 60개에 달했다. 올해 매출이 작년 대비, 10~40%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기업도 58개였다. 또 최근 5년간 파산하거나 폐업⋅법정관리 등에 들어간 지역 업체가 41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361개 업체의 11.3%다. 이 조합 이창용 사업관리본부장은 “파산·폐업까진 아니어도 그 경계선에서 하루하루 피말리며 분투 중인 업체들은 더 많다고 봐야 한다”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불황으로 접어든 조선 기자재 업계가 수주 물량 감소와 채산성·유동성 악화로 고사 직전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급등, 주 52시간 시행에 직격탄

업계에서는 경영 악화로 신용 등급이 하락하면서 은행 대출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된 데다 원자재 가격 급등, 들쭉날쭉한 수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 다양한 요인이 업체들을 압박한다고 우려했다. 나영우 경남조선해양기자재협동조합 이사장은 “현재 일감은 2년 전쯤 수주한 물량들인데 당시에 비해 현재 철강 가격은 60%나 올라 기자재 업체들이 폭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야간·주말 특근이 없어진 탓에 ‘임금 메리트’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근로자들이 이탈하는 것도 고민거리다. 게다가 코로나 탓에 외국 인력 고용도 쉽지 않다. 경남의 경우 2015년 9만여 명이던 조선업 인력이 올해 4만4000여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최금식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대형 조선소의 수주 물량이 기자재 업계까지 낙수효과가 미치는 내년 상반기까지 보릿고개를 버텨야 한다”면서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신용 대출 조건 완화, 납품 단가 현실화, 선급 검사비 지원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 위해 선박 수리 산업 지원해야

부산 지역 조선 업계에서는 중국·동남아에 밀려 갈수록 쇠락하고 있는 수리 조선업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후 선박이 많아지고 선박 대형화·첨단화 등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선박 수리 산업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만큼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구축을 통해 수리 조선업을 지역의 핵심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은 선박 수리 산업의 거점이기도 하다. 한국선박수리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전국 729개 수리 조선 업체 중 630개(미등록 소형 업체 포함) 정도가 부산에 밀집해 있다. 이들 업체에 근무 중인 인력은 8000~1만명가량 된다.

선박 수리업은 선박 내·외부의 개조·보수·정비·검사 등을 전문으로 하는 분야다. 새 배를 건조하는 것 못지않게 부가 가치가 높고 철강·기계부품·전자·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김귀동 한국선박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대형화·첨단화·친환경화하는 선박의 변화 추세를 감안하면 선박 수리업의 미래 성장 잠재력이 크다”면서 “부산 감천항 수리 조선 전용 부두 확대, IT·친환경 기술 접목을 통한 기술 고도화, 3만t 이상 대형 선박을 수리할 수 있는 대형 수리 조선소 설치 등 시급한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해양대 신용존 해양경영경제학부 교수는 “요즘 떠오르고 있는 그린·에코·자율운항선 등 고부가 가치 수리 조선업 시장을 선점할 획기적인 지원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