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7명으로 시작해 현재 1만1000여명 있는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식품기업 한국야쿠르트의 마케팅 병기(兵器)이다. 조선시대 행상(行商)을 연상시키면서도 ‘신뢰’ ‘친근’ 같은 긍정 이미지가 단단하다. 그런데 회사측은 ‘야쿠르트 아주머니’ 명칭을 2019년부터 ‘프레시 매니저’(Fresh Manager, 이하 FM)로 바꾸었다.

1970년대와 1990년대에 어깨에 가방을 메고 고객을 찾았던 야쿠르트 아줌마들은〈사진 1·2〉 최근 탑승형 전동 카트 '코코'〈사진 3〉를 이용해 편리하게 배달하고 있다./조선일보DB

야쿠르트 유제품을 주로 팔던 이 회사는 2016년 젊은층 취향의 커피 ‘콜드브루(cold brew)’를 국내 최초로 내놓았다. 2017년부터 가정간편식 ‘잇츠온’을 팔고 있고, 그해 자사 전용 온라인 쇼핑몰을 열었다. 올 3월에는 사명(社名)을 ‘hy(에치와이)’로 바꾸었다. 창업(1969년) 52년 만의 ‘결단’이었다.

그러면서 매출 구조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hy는 디지털 부문에서 전년보다 88% 늘어난 5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3년 전과 비교하면 700% 정도 늘었다. 작년 12월 프레딧(fredit)으로 확대개편한 온라인 쇼핑몰 회원수는 올 6월 100만명을 돌파했다.

hy는 올해 디지털 부문 매출이 적어도 1000억원에 이르러 총매출액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자신한다. 1년 만에 100% 가까운 수직성장이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기업이던 hy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는 3가지 차별화 포인트가 있다.

◇①남들 따라않고 ‘나 만의 강점’ 더 키운다

hy 입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온라인 쇼핑 같은 더 편리한 유통 채널 등장으로 방문 판매의 가치가 급감했다. 여기에다 디지털 시대의 주 소비층인 MZ세대(일명 2030세대)는 대면(對面) 접촉 자체를 꺼려 회사의 장기 생존 기반이 흔들렸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hy 본사 사옥/송의달 기자

이런 상황에서 hy는 ‘원칙있는 디지털 전환’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2016년부터 디지털 및 신상품 개발을 맡고 있는 신승호 멀티M&S부문 이사는 “남들이 하는 걸 우리도 따라 해서는 돈 낭비, 시간 낭비만 될 것으로 보고 ‘우리 만의 경쟁력’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원칙을 정했다”고 말했다.

hy가 가장 주목한 것은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프레시 매니저(FM)와 이들의 운반 수단이었다. 회사는 FM들에게 디지털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이들 모두에게 PDA(개인용 정보단말기)를 지급해 고객 관련 데이터를 상시 입력해 최적화된 배달 동선(動線)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해 제공하고 있다.

현장 카드 결제, 무인(無人) 결제와 재고 관리 기능 등을 갖춘 전동 카트 코코. 대당 가격은 1000만원이 넘는다./조선일보 DB

◇1200억원 들여 전동차 키우고 디지털 기능 장착

FM이 끌고 다니던 운반용 손수레는 두차례(2014년, 2020년)에 걸쳐 크기와 기동성, 기능을 높여 첨단 전동 카트 ‘코코’(COCO)로 탈바꿈했다. 예전에 야쿠르트 3000개 정도 들어가던 ‘코코’는 지금 5000개를 넣고 다닌다. GPS, 와이파이,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기능을 장착해 현장 카드 결제, 무인(無人) 결제는 물론 재고 관리까지 가능하다. hy는 ‘코코’ 개량에만 1200억원을 투자했다.

hy는 ‘디지털 전사(戰士)’로 거듭난 FM들을 배송 인프라의 중심축으로 활용한다. 지난해 서울 서초·강남·송파 지역 1인가구 소비자들을 상대로 시작한 ‘프레딧 야간 안심배송’ 서비스의 경우, 여성 FM이 오후 6~10시에 밀키트와 샐러드 등을 배달해 호평받고 있다.

hy의 신형 전동카트와 구형 손수레/hy 제공

식품 배송에서 가장 까다로운 라스트마일(last mile·소비자 배송 최종단계) 구간을 전통적인 식품기업이, 그것도 디지털 역량이 취약한 1인 개인사업자(프레시 매니저·FM)와 공동 돌파하는 것은 한국 유통업계를 통틀어 hy가 유일하다.

hy는 자사 제품은 물론 이유식 전문 기업, 수도권 백화점 등과 협업해 FM을 통한 배송 서비스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최동일 상무는 “이렇게 되면 FM들의 월(月) 수입이 예전 보다 20~30% 늘어나고, 소비자들은 신선 과일과 육류, 음식 등을 문 앞까지 섭씨 5~7도의 최적의 신선(新鮮) 상태로 배송받아 윈·윈(win-win)하는 구조”라고 했다.

◇②MZ세대로 소비층과 제품 영역 확장하다

hy은 수년 전만 해도 고객의 80~90%가 40~50대 이상 장·노년층이었다. hy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소비 주체(고객)와 제품 영역을 MZ세대로 확장을 꾀했다. 먼저 발효유 유제품 일변도이던 상품군(群)을 콜드브루(2016년), 밀 키트(meal kit, 가정간편식·2017년), 그린 키트(green kit·샐러드·2018년) 등으로 다양화했다.

신승호 이사는 “제품 카테고리를 확대하는 동시에 이를 오프라인 배송조직인 FM과 결합해 냉장, 무료 배송 체계를 구축한 결과 온라인 쇼핑몰 회원 수가 2017년부터 연평균 18% 이상 늘었고 올 6월에는 100만명을 넘었다”고 했다.

hy가 국내 최초로 출시한 '콜드 브루' 커피

2017년 시작한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을 작년 12월 ‘프레딧(fredit)’으로 통합업그레이드하면서 유기농·친환경 생활용품을 크게 늘린 것도 MZ세대 공략의 일환이다. 전체 1500여개의 프레딧 취급 품목 가운데, 화장품·세제·비누·치약·치솔 같은 1000여개 생활용품은 젊은층이 선호(選好)하는 친환경·유기농 인증 제품들로만 채웠다.

◇경쟁사들 인기 제품도 입점...판매·배송까지

hy는 프레딧 회원들이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프레시 매니저(FM)가 집으로 상품을 무료 배송해주는 독자적인 ‘온·오프라인 통합 플랫폼’을 구축해 놓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건강한 제품을 신선하게 배송하고자 하는 다른 식품기업들의 인기 제품도 입점시켜 판매하고 있다.

MZ세대 특유의 '가치 소비' 트렌드를 정조준해 hy가 자사 쇼핑몰 '프레딧'에 내놓은 유기농 상품/모바일 캡처

디지털 주력 소비 집단인 2030세대를 고객으로 확보하는 노력도 쉼없이 진행한다. 2016년부터 매년 MZ세대를 대상으로 동네 주변의 야쿠르트 아주머니(FM)를 찾아 특가(特價) 상품과 경품을 제공하는 모바일 이벤트 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 행사는 가상(假像) 캐릭터를 찾는 ‘포켓몬 고’를 연상시켜 젊은층 사이에 매번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모바일 앱을 내려받으면 hy의 프레시 매니저(옛 야쿠르트 아주머니)를 찾을 수 있다./인터넷 캡처

현재 ‘프레딧’ 몰 회원 가운데 2030세대는 43만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이는 전용 모바일 앱으로 접근성을 높이고 젊은층 특유의 ‘가치 소비’ 트렌드를 겨냥해 맞춤형 마케팅을 벌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③매년 총매출의 10% 디지털 투자...‘충성 고객’ 키운다

hy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2016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을 투자하고 있다. 자사 전용 쇼핑몰(프레딧)과 모바일 앱의 사용자 경험(UX)과 편리 향상, 최적화된 정기구독 서비스 제공을 위해 연간 총매출액의 10%씩을 디지털에 쏟고 있는 것이다.

신승호 이사는 “투자 대비 효과가 금방 가시화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경영진이 ‘의지(意志)’를 갖고 끈기있게 지속 투자를 하고 있는 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hy의 '원칙 디지털 전환'을 실무적으로 총괄하고 있는 신승호 멀티M&S 부문 이사

hy는 쇼핑몰 회원 수 같은 양적(量的) 증가 보다는 헤비 유저(heavy user), 즉 충성 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질적(質的) 성장에 주력하고 있다. 최동일 상무는 “앞으로도 정직(正直), 건강, 신선(新鮮)이라는 회사의 3대 핵심 가치에 충실해 2025년까지 총매출액의 30%를 디지털 부문에서 달성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hy의 변신에 대해 ‘업(業)의 본질’을 재해석하면서 디지털 기술을 효과적으로 접목하는 ‘디지털 피보팅(digital pivoting)’의 성공 사례라고 평가한다.

경기도 기흥 중앙연구소에서 hy 연구원들이 실험실에서 프로바이오틱스의 장기 배양 등을 연구하고 있다./hy 제공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hy는 방문 판매라는 업(業)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기술 접목과 MZ세대로의 과감한 고객 확장을 통해 디지털 유통기업으로서 회사의 정체성까지 몇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