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전기차 시대와 함께 신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배터리 소재·원료 사업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양극재와 같은 핵심 소재 공장을 국내외에 신·증설하고, 원료 확보를 위해 해외 광산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기업은 배터리 완제품을 만드는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소재·원료 분야에선 중국이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배터리 제조사는 물론 철강·중공업 기업까지 소재·원료 사업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최근 지분을 인수한 호주 레이븐소프사의 니켈 광산(위쪽 사진)과 LG화학의 청주 양극재 공장 증축 현장. 최근 국내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소재, 원료 사업에 잇따라 투자하고 있다. /포스코·LG화학

◇공장 짓고 광산에도 투자

LG화학·SK이노베이션·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배터리 핵심 소재를 자체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배터리 4대 핵심 소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이다. 이 시장은 2020년 213억달러(약 23조7000억원)에서 2030년 1232억달러(약 137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LG화학은 배터리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양극재 생산 능력을 2026년까지 현재의 7배에 달하는 26만t 규모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청주 공장을 증설하고 있고, 하반기에는 구미 공장을 착공한다. SK이노베이션도 최근 중국 배터리 기업 EVE에너지, 중국 배터리 소재 전문 기업 BTR과 손잡고 중국 현지에 양극재 생산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삼성SDI는 양극재 자체 생산 비율을 현재 20% 수준에서 2023년까지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포항에 양극재 생산 공장을 착공했다.

배터리 소재·원료 투자하는 기업들

국내 기업들은 배터리 소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니켈, 리튬, 흑연과 같은 원료 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달 26일 연산 4만3000t 규모의 수산화리튬 공장을 전남 광양에서 착공했다. 수산화리튬은 양극재에 쓰이는 주원료다. 포스코 관계자는 “2030년까지 연 22만t 규모의 리튬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니켈·흑연 확보를 위해 최근 호주 광산 업체들의 지분도 잇따라 인수했다. SK넥실리스는 유럽과 미국에 음극재 재료인 동박 공장을 짓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 회사는 현재 연산 4만3000t 수준인 동박 생산 능력을 2025년까지 세계 최대 수준인 20만t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도 최근 양극재 주원료인 탄산리튬을 폐배터리에서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4대 소재 중국 점유율 50~70%

국내 업체들이 이처럼 배터리 소재·원료 투자에 속도를 내는 것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에서 한국 점유율은 32%, 중국은 33%다. 하지만 소재 시장에선 다르다.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4대 핵심 소재의 경우 중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50~70%대에 달한다. 중국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일찌감치 저가 공세를 펼쳐 소재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여왔다.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양극재 20.2%, 음극재 8.7%, 분리막 11.9%, 전해액 8.1%에 그친다.

한 배터리 업체 임원은 “2010년 센카쿠열도 분쟁 당시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 내 희토류 수입 가격이 9배 폭등했었다”면서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국도 중국의 자원 무기화 전략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소재·원료 국산화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