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윤희진씨는 온라인 게임과 증강현실 콘서트에 쓰일 가상(virtual) 의상 10벌을 최근 완성했다. 제작 과정에서 윤씨는 ‘클로-셋 커넥트’라는 가상 패션 원단·부자재 쇼핑몰에서 재료를 구입했다. 초실감 기술로 구현한 보송보송한 털실부터 반짝이가 붙은 원단, 지퍼·벨트고리·단추까지 1500개가 넘는 가상 원단과 부자재를 종류별로 고를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일본 지퍼회사 YKK, 프랑스의 마스크천 회사 샤르제르(Chargeurs) 같은 현실의 의류·부자재 회사들이 가상 공간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클로-셋 커넥트에는 전 세계 유명 원단 회사·패션 부자재 회사 100여 곳이 입점했다. 아디다스·나이키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이곳에 접속해 3D(3차원) 영상 제작용 부자재를 사간다. 가상 부자재 가격은 실물의 10분의 1 정도로, 한 달 만에 구매·다운로드 20만건을 기록했다. 클로-셋 커넥트 관계자는 “가상 아이템 자체도 돈이 되지만 앞으로는 실제 제품 생산 주문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클로-셋 커넥트는 메타버스 기술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한 한국 중소기업·스타트업들 중 하나다. 3차원 가상세계를 통해 세계시장을 바로 공략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동대문 원단, YKK 지퍼까지 판다…진화하는 가상 유통
서울 동대문시장의 원단도 가상 공간에 입점했다. 스타트업 패브릭타임은 국내 동대문 원단 20만개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미국·프랑스 등 52국에 수출하는 업체로, 최근 자사가 취급하는 원단 600여 종을 디지털 상품으로 만들었다. 외국 바이어는 실제 샘플을 우편으로 받아보지 않아도 디지털 샘플을 구입해 3D(3차원)의 영상 의상을 제작해볼 수 있다. 일룸·데스커·에이스침대 같은 국내 가구·인테리어 회사는 3D 플랫폼 어반페이스, 롯데홈쇼핑의 ‘VR스트리트’ 등에 자사의 가상 아이템을 납품한다. 소비자는 가상 가구를 메타버스 안에 배치해보고 마음에 들면 실물 제품을 주문할 수 있다.
메타버스 기술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분야가 패션뿐만은 아니다. 토종 스타트업 비브스튜디오스는 영상시각효과를 활용한 초실감 기술을 통해 광고·제품 발표회·콘서트를 가상현실로 구현한다. 작년 어깨수술로 무대에 서지 못했던 BTS의 슈가가 홀로그램 영상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구현했고, 작년 말 기아 카니발 자동차의 신제품 발표회도 증강현실로 진행했다. 증강현실 영상 속에서 자동차는 도로를 내달려 캠핑장·고급 리조트로 향한다. 실제 촬영은 1157㎡(350평) 스튜디오 안에서 이뤄졌다. 비브스튜디오스 김세규 대표는 “불붙고 지진이 나는 장면도 스튜디오 안에서 구현할 수 있다”며 “초실감 기술을 접목한 메타버스를 활용하면 해외 촬영 비용의 50%가량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동방신기·슈퍼주니어 등 SM엔터테인먼트 가수의 라이브 콘서트를 증강현실로 보여준 자이언트스텝, 덱스터 스튜디오 등도 초실감 기술로 부각되는 업체다. 영상시각효과가 상대적으로 각광받지 못했던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기술 개발을 지속한 덕에 최근 메타버스 인기의 수혜자가 됐다.
◇가상 미술관도 등장...진화하는 초실감 기술
해외에서도 가상세계는 갈수록 정교한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가상·증강현실 협업 플랫폼 ‘스페이셜’은 가상 공간에서 회의나 콘퍼런스를 할 수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다. 최근에는 이곳에 대표적인 NFT(대체 불가능 토큰) 거래소인 오픈시·수퍼레어가 가상 미술관을 열겠다고 나섰다. NFT로 만든 미술 작품들을 사고팔 수 있는 가상 갤러리가 등장한 것이다. 이진하 공동 창업자는 “스페이셜 안에서 미술품을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결제 시스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메타버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연동된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한다. 미국의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 네이버제트가 출시한 제페토는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대표적인 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