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장수생막걸리 가격이 1300원에서 1600원으로 올랐다. 이 회사가 가격을 올린 것은 15년 만이다. 회사 측은 “원재료인 쌀 가격과 포장재·유통 비용까지 최근 줄줄이 올라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은 이달부터 편의점 판매용 ‘햇반 컵반’ 가격을 300원 올렸다. 하이트진로도 오는 7일부터 맥주 출고가격을 5년 만에 인상한다. 소비재 가격 인상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코카콜라 본사는 최근 3년 만에 콜라 가격 연내 인상 계획을 밝혔다.

국내외에서 생필품·먹거리를 포함한 소비재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한 원유·철광석 등 원자재값 상승이 최근 소비재 가격을 본격적으로 끌어 올리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푼 천문학적인 돈이 원자재 시장에 흘러간 데다 미국·중국의 빠른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폭발이 겹친 결과다. 미국이 코로나 지원을 위해 푼 돈이 3조7000억달러(약 4100조원)에 이른다.

소비자 물가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도 꿈틀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 물가 지수는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5월 -0.3%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였지만,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2%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도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보다 0.6%,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2018년 8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미국의 백신 접종률이 40%를 넘어가면서 소비 회복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원자재값 상승에 미국의 경기 회복이 겹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한 대형마트 /조선일보DB

가격 상승은 철광석·구리·쌀·밀과 같은 원자재에서 시작해 철강·섬유 등 중간재, 생필품·식품 같은 소비재로 전이되고 있다.

최근 플라스틱 수저나 배달음식용 용기 가격은 올 초 대비 10%씩 올랐다. 이유는 플라스틱 제품 원료인 에틸렌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기초 석유화학 제품인 에틸렌은 병뚜껑, 필름, 차량 내장재, 전자기기, 기저귀, 마스크 등 광범위하게 쓰인다. 에틸렌 가격은 지난해 4월 말 t당 355달러에서 지난달 말 1105달러로 3배 이상 올랐다. 이 제품이 들어가는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소비재 업체 가운데 하나인 미국 프록터앤드갬블(P&G)은 올 9월부터 생리대·기저귀·면도기 가격을 5~10% 올리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네슬레와 유니레버 등 글로벌 소비재 기업들도 지난 1분기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각종 의류 소재로 쓰이는 스판덱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옷값도 오름세다. 스판덱스 가격은 지난해 4월 t당 5800달러에서 올해 4월 9200달러로 58% 상승했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기존 옷값을 그냥 올릴 수 없으니, 디자인을 바꿔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간재 가격이 오르자 소비재를 생산하는 주요 기업들은 가격을 인상하거나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생산 원가 상승으로 인해 판매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생활필수품 38개 품목의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평균 2.2% 상승했다. 달걀(53%), 두부(17.4%), 식용유(7.4%), 즉석밥(7.1%), 햄(5.5%) 등 각종 먹거리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시장에서는 소비자 물가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특히 세계 최대 소비 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유럽연합(EU)과 같은 선진국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는 것도 소비를 진작시켜 물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업종을 대표하는 회사들이 잇따라 가격 인상에 뛰어들면서 업계 전반으로 가격 인상의 도미노 현상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부에선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다르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백신 접종과 함께 경기가 좋았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지만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률이 극히 낮은 데다 코로나 이전부터 경기가 나빴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 경기 회복과 함께 물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경기 회복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필품 중심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다”면서 “정부가 금리 조정과 같은 정책 대응을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