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이 오는 8일부터 주간·야간 2개 조로 운영하던 공장을 주간 1개 조로만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감이 없어 작업 시간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회사는 지난달부터 전 직원 42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도 받고 있다. 현재 신청자는 100여 명. ‘명퇴자가 너무 적으면 순환휴직을 검토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생산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2017년만 해도 연간 26만 대를 생산했다. 르노삼성은 만성 적자를 내온 한국GM·쌍용차와는 달리 매년 2000억~4000억원(2015~2019년)의 흑자를 내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부산 공장의 생산량은 그 절반도 안 되는 11만 대에 그쳤다. 회사는 11년 만에 적자(700억원)를 냈다. 올해 생산 목표는 겨우 10만 대다.
생산량 절반을 차지하던 닛산의 중형 SUV ‘로그’ 생산 계약이 끝난 2019년 9월 위기는 시작됐다. 르노 본사는 대체 물량 투입을 미뤘다. 부산공장의 생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르노 본사는 2019, 2020년 연속 전면 파업까지 겪자 신차 배정을 꺼렸다. 작년 9월에야 유럽 수출용 ‘XM3′를 배정했지만, 물량은 닛산 로그 때의 30%에 불과했다.
르노그룹은 최근 연간 글로벌 생산량을 400만 대에서 310만 대로 줄이겠다는 구조 조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부산공장을 가장 수익성이 떨어지는 공장 중 하나로 지목했다. 일각에서는 르노가 한국 철수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 7년간 3조원대 적자를 낸 한국GM, 13년간 1조8000억원 적자인 쌍용차에 이어 르노삼성까지, 30만 일자리가 걸린 자동차 3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동률 40~60% 한국GM·르노삼성, 구조조정 1순위
쉐보레 말리부와 트랙스를 만드는 한국GM 부평2공장의 현재 가동률은 27%로, 작년(55%)의 절반 수준이다. 올 들어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자 GM 본사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유독 부평2공장의 감산 폭이 컸다. 지난 2018년 폐쇄된 군산 공장의 직전 가동률이 25% 수준이었다. 부평2공장은 ‘제2의 군산공장’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한국GM의 연도별 생산 계획상으로도 부평2공장은 2023년부터 SUV 트랙스 생산이 끊기고, 2026년부터는 말리부 생산도 ‘0′이 돼 일감이 사라진다. 그 전에 신차 배정을 받지 못하면 폐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셧다운·감산 일상화된 마이너 3사
자동차 산업은 시설투자·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크다. 생산 능력의 70%는 가동을 해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 이익이 발생한다. 그런데 한국GM·르노삼성·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 마이너 3사는 최근 2~3년간 셧다운(생산 중단)과 감산이 일상화됐다. 3사의 지난해 공장 가동률은 생산 능력의 40~60%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부품 공급 차질 탓도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쟁력 상실이다.
한국GM은 2018년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3000명을 감원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당시 GM이 7조원, 산업은행이 8000억원을 지원했는데도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코로나도 악재였지만 적자 회사에 1000만원 이상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노조도 위기를 심화시켰다.
쌍용차는 지난해 12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올 들어 6번이나 생산이 중단됐다. 주요 부품 협력사가 “어음 아닌 현금을 달라”며 납품을 거부한 것이다. 지난달 공장 가동 일수는 단 3일. 지난 2일부터 공장을 재가동하긴 했지만, 이달 말까지 미국 자동차 유통업체 HAAH의 투자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법정관리가 개시된다. 협력사와 채권자들이 쌍용차의 ‘회생 계획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청산될 가능성도 있다.
◇전기차 미래도 없다
이들 3사에는 전기차라는 미래 시장도 없다. GM은 최근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생산 자체를 중단한다”고 선언했지만 한국 공장에는 전기차 생산을 맡기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GM테크니컬센터(연구소)의 한국 법인은 GM의 차세대 전기차 개발에 참여하고 있지만 전기차 생산은 맡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도미니크 시뇨라 르노삼성 사장도 최근 “르노 본사는 전기차를 한국에서 생산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는 부품 수가 적어 30% 정도의 인력 구조 조정이 필요하지만 경직된 노동 환경의 한국은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점을 모를 리 없는 글로벌 본사가 아예 전기차 물량을 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직된 노조… 한국은 구조 조정 1순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수요 감소와 미래차 전환 대응 차원에서 수익성 낮은 공장들을 폐쇄하고 있다. GM은 2019년 북미 공장 5곳 폐쇄를 발표하면서 해외 공장 2곳을 추가 폐쇄하겠다고 했는데, 업계에선 한국 공장이 그중 하나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난해 적자 전환한 르노그룹은 작년 11월 프랑스 플린스 공장 폐쇄를 발표하고 추가 공장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포드는 올해 브라질 공장 3곳을 모두 폐쇄하기로 했다. 닛산은 오는 12월 스페인 공장 문을 닫는다.
GM과 르노그룹이 한국 생산을 유지했던 이유는 생산 품질과 생산성이었다. 그러나 통상임금, 최저임금 상승 등 비용은 늘고 강성 노조의 잦은 파업으로 공급 안정성이 악화되자 한국 공장들을 버리는 카드 후보에 올리고 있다.
업계에선 “노조가 과거 자동차 산업 팽창기처럼 떼쓰기를 했지만 전기차 시대 인력 구조 조정이 불가피한 흐름 속에서 자충수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예컨대 르노삼성 노조는 2019년 39일, 작년 14일간 전면 파업과 부분 파업을 벌였다. 조합원 절반이 파업에 반대해 출근했지만 아랑곳 않고 민주노총 가입까지 추진하다 실패했다. 업계 관계자는 “모범생이던 르노삼성이 급속히 망가진 데는 노조 파업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