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26일 정기총회에서 제38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26일 정기총회에서 제38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앞서 대한상의 회장을 겸직하는 서울상의 회장에 SK 최태원 회장, 무역협회 회장에는 LS그룹 구자열 회장이 새로 선임됐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포함하면 국내 경제 5단체장이 모두 기업인으로 채워지는 것은 2006년 무역협회 김재철 회장 퇴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재계에서는 “기업인을 수장으로 둔 경제 단체들이 앞장서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해 달라”는 요구가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위상이 급격히 추락한 전경련이 쇄신을 통해 조직을 재건하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순수 민간단체는 전경련과 경총”이라며 “두 단체가 기업의 입장을 앞장서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쇄신 요구에 답할까

허창수 회장도 이런 재계 분위기를 의식한 듯, 지난달 26일 취임사에서 “올해는 전경련 창립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새로운 경제 성장의 신화를 쓰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재창립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쇄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2017년과 2019년에 이어 올해에도 퇴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후임자를 찾지 못해 결국 연임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1961년 출범 이후 줄곧 경제 단체의 맏형 역할을 해왔지만 현 정부 들어 전경련을 건너뛰고 각종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일이 늘면서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국내 대기업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때 30명에 달하던 박사급 연구진이 10명도 남지 않을 정도로 조직이 크게 축소됐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엔 경총 주도로 전경련을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굴욕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는 대기업 총수를 잇따라 수장으로 영입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다음 달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하고,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지난 24일 취임했다. 대한상의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같은 거물급 인사를 회장단에 영입하는 데 성공하면서 국내 대표 경제 단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전경련도 조직 쇄신을 위해 회장단에 IT(정보 기술) 기업 총수와 재계 3~4세를 비롯한 젊고 새로운 인물의 영입을 추진 중이다. 이번에 허창수 회장과 함께 연임한 권태신 부회장은 26일 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과거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업무를 하면서 혁신과 변화를 할 것”이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확산시키고 다양한 분야의 젊은 기업인을 회장단에 모시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4대 그룹 복귀와 관련해서는 “재판을 받고 있는 총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 복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 단체에 대한 비판 목소리 높아

재계에서는 전경련을 포함한 주요 경제 단체가 각종 현안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필요하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반기업법이 잇따라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경제 단체들이 너무 무기력했다”고 말했다.

과거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나 SK그룹 최종현 회장,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주요 현안에 불이익을 감수하고 제 목소리를 냈다. 최 회장은 1993~1998년 전경련 회장을 지내면서 정부의 기업 관련 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때문에 회사가 대대적인 세무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경제 단체 회장들은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서슴없이 하면서 기업들의 입장을 전달했다”며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경제 단체의 상근직 임원들도 자신의 직을 걸고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