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손으로 시작해 세계적 주방생활용품 기업 ‘락앤락(Lock&Lock) 신화’를 일군 김준일 하나코비 회장이 ‘1인 3역’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17년 8월 ‘락앤락’의 경영권과 보유 지분을 홍콩계 사모(私募)펀드에 모두 매각하고 경영 일선을 떠난지 3년 6개월여 만의 ‘귀환’이다. ·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살인 김 회장은 지난달 26일 가진 인터뷰에서 “돈도 좀 모았고, 안목도 생겼으니 지금부터는 보람있는 것들을 하며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업' 한 분야였으나 이번에는 국내에서 스타트업 육성, 베트남 비즈니스, 사회공헌이라는 세가지 방면에서다.
◇5년 새 사회공헌 재단 두 개 세워
먼저 2016년 말 ‘아시아발전재단(ADF)’을 세워 장학 사업 등을 하고 있는 그는 최근 사재(私財) 30억원을 다시 출연해 두 번째 사회공헌 재단으로 ‘한(韓)문화재단’을 세웠다. 이 재단은 지난달 27일 서울 양재동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 인생 후반부에 재단을 두 개나 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돈은 쓰기 위해서 번다고 본다. 돈은 물 같아서 끌어안을수록 새 나가고 놔두면 썩는다. ADF는 내가 사업과 영업을 했던 동남아에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한문화 재단’은 최근 K팝, K푸드 등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한국 문화를 홍보전파하는데 민간 차원에서 도움되고자 설립을 결심했다.”
- 어떤 활동을 하는가?
“창립 첫 사업으로 올해 ‘K-언어 페스티벌(K-Language Festival)’을 열 것이다. 전 세계 소셜미디어(SNS)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 가르치는 유튜버 등을 지역별 경진대회를 거쳐 뽑아 최우수 SNS에 10만달러(약 1억1166만원) 상금을 지급한다. 정부 기관인 ‘세종학당’과 협력해 한국어 보급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싶다.”
김 회장은 “내년에는 세계 각국 국가 정상과 정치인들을 포함해 1억5000만명이 배우는 태권도 보급과 진흥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시아발전재단’은 어떤가?
“베트남·미얀마·캄보디아 등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성적이 우수한 고교·대학생을 매년 200~300명씩 뽑아 500달러~2000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베트남 어머니를 둔 한국 다문화가정 자녀를 베트남으로 유학 보내는 ‘모국어 배우기’ 프로그램도 2018년부터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간에 신뢰와 우정이 돈독해져 서로 도움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품질·마케팅의 힘...연간 4000억원대 기업 일궈
대구의 부호(富豪) 집안에서 태어난 김준일 회장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중학교(경북중) 졸업 후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영업사원 일을 하며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행정학과)를 졸업했다. 26살 때인 1978년 수입 주방용품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고 1986년 주방용품 제조기업을 세웠다. 그는 ‘자신만의 제품'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8년 두 번 잠그는 방식의 투명 밀폐용기 ‘락앤락’을 내놓았다.
- ‘락앤락’이 선풍적 인기를 모았는데 비결이 뭔가?
“다른 밀폐용기 제품들과 달리 용기(容器)의 몸체와 뚜껑을 동일 재질로 해서 잠그는 제품을 내놓으려 2년간 연구개발(R&D)에 매달렸다. 제품 금형(金型)을 만드는데만 1년 반이 걸렸다. 1998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28분짜리 홍보비디오를 당시로선 큰 돈인 28만달러를 들여 제작했다. 정보와 홍보를 결합한 인포머셜(Informercial)이었는데 이게 적중했다. 우수한 품질과 마케팅의 합작품이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미국 홈쇼핑에서 지폐를 넣은 ‘락앤락’을 물속에 넣었다 빼내도 하나도 젖지 않은 지폐를 보여주는 광고가 히트치면서 미국, 캐나다 등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 홈쇼핑 채널에서 ‘분당 1000만원 매출’ 기록을 처음 세우고 7회 연속 매진을 했다. 2002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현지 공장을 가동했고 2007년부터 베트남 사업을 시작했다.”
세계 119개국에 수출한 ‘락앤락’은 연간 4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리는 상장(上場)기업이 됐고, 김 회장은 우리나라 부자 29위(재산 8049억원·2013년 포브스코리아 선정)에 올랐다.
- 그런데 2017년 8월 왜 갑자기 ‘락앤락’을 팔았나?
“자수성가(自手成家)형 1인 창업가로 1년에 240일 가까이 해외로 돌아다니며 바쁘게 활동하다가 몸에 무리가 왔다. 시진핑의 집권 후 부정부패 척결 정책으로 중국내 선물용 특판 매출이 많이 줄어 온라인 유통으로 전환을 추진하던 중 건강이 악화돼 영업회의를 하다가 중단하고 급거 귀국했다. 2016년 12월이었다.”
◇“건강 악화로 회사 매각...자녀에게 한 株도 상속 안해”
- ‘상속세 부담 때문에 회사를 팔았다'는 얘기가 나돌았는데.
“상속세 때문은 전혀 아니다. 신체와 건강상의 무리가 오면서 혼자 버티는 것보다는 체계적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곳에 넘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사모펀드가 회계법인을 통해 먼저 연락해 왔다.”
- 이후에 주식 등 재산 상속을 했나?
“아들 3명에게 주식 한 주(株)도 상속하지 않았다. 경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현금이나 주식 상속은 약(藥)이 아닌 독(毒)이 될 수 있다. 앞으로 10년간은 아들들에게 ‘가르치기’ 보다는 내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다. 제대로 기업인으로 성장할 생각이 있다면 많이 배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적게 배울 것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36세 장남은 하나코비 과장으로, 34세 차남은 하나코비 베트남 법인 과장으로 있다. 대주주의 아들이라고 이사, 상무, 전무로 고속승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두 아들은 인턴과 정사원, 대리 등 모든 직급을 일반 사원과 똑같이 밟았다. 막내 아들은 미국 유학 준비 중이다.”
◇작년 10월부터 환경家電 기술스타트업 CEO 맡아
김 회장은 한국에서의 스타트업(startup) 육성과 베트남 신사업에서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3년 반 전 ‘락앤락’ 매각으로 확보한 6293억원의 자금으로 새로운 도전의 여정에 나서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유전체 분석 기업인 ‘EDGC(이원다이애그노믹스)’와 환경가전(家電) 전문 기술 스타트업인 ‘코비플라텍' 등 3개사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 특히 관심갖고 주력하는 회사가 있는가?
“공기 중 세균·바이러스를 없애면서도 오존을 발생시키지 않는 리얼벌크 플라즈마 기술을 개발한 코비플라텍이다. 자본 투자에 이어 작년 10월 아예 이 회사 대표이사(CEO)를 맡았다. 작년 봄 공기살균청정기 ‘에어플라'와 공기살균탈취기 ‘엑스플라’를 출시했다. 공기 중 바이러스와 세균을 살균(殺菌)하는 효과를 인정받았다.”
김 회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외에 신종 질병이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게 지금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정상)이라고 보고 전문 기술 인력들을 더 뽑아 회사를 키울 생각”이라며 “1차로 경기도 평택에 2만㎡(약 6000평) 규모 공장을 올 연말 완공한다”고 말했다.
- 왜 굳이 베트남에서 두번째 사업을 하는가?
“베트남과의 오래 인연을 맺어온 데다 높은 성장 잠재력을 믿어서다. 베트남은 한국의 30년 전 모습 그대로인데 유교문화가 뿌리깊고 대가족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은 아세안에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나라이다.”
- 베트남 비즈니스 계획은?
“직접 제조업을 하지 않고 인력을 최소화하는 간접 방식을 구사한다. 부동산 개발과 내수 유통, 물류 단지 조성 등 3개 분야에서다. 올 연말에 호치민시 인근 냐베 신도시에 ‘코비 홈’이라는 종합쇼핑몰을 지어 인테리어와 가구에 특화한 B2B 사업을 시작한다. 내년 2월에는 호치민시의 신흥 부촌인 푸미흥 중심부에 17층과 20층짜리 오피스 빌딩(‘코비 타워’)을 각각 완공해 부동산 개발 및 임대업도 한다.”
- 사업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을 꼽는다면?
“열정과 도전하는 자세라고 본다. 사업을 하다가 숱한 실패와 어려움에 부딪치는데 이때 꺾이거나 약해지면 안된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인은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다. ‘한국에서 통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현금 퍼주기 보다는 도전 정신 북돋워야
- 지금 우리나라 20~30대의 도전 정신이 약한 것 같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헝그리 정신이 약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일본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만년 세계 1등이라고 착각하며 자만에 빠진 소니(SONY)가 삼성전자에 역전당하지 않았나. 젊은이들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아직 우리나라엔 성장이 더 필요해 보인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발전과 성장의 원동력은 ‘결핍’이다. 징기스칸의 세계 제국 건설은 겨울이면 초원에서 먹고 살 것이 없어서 그곳을 벗어나야겠다는 결핍과 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북유럽은 국민들에게 퍼주기 하다가 직업 훈련으로 복지정책의 방향을 바꾸었다. 우리나라도 실업과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해 현금만 대량 살포할 게 아니라 도전을 북돋워주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40년 비즈니스 인생을 정의(定義)한다면?
“나와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가 직원 만족과 복지에 눈을 떴다. 사업 초창기에 경리 사원과 운전기사까지 포함한 5~6명의 모든 임직원이 한달에 한번은 최고급 프랑스레스토랑에서 회식을 했다. 지금부터는 5년 단위로 ‘덤’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회와 나라, 세계에 보답하고 싶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남은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