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당이 거론하기 시작한 코로나 이익 공유제에 대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전개하고, 참여 기업에 국가가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과거 선례가 있다”고 했다. “한중 FTA를 체결할 때 기업과 공공 부문이 함께 기금을 조성해 피해를 보는 농어촌 지역을 돕는 이른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운영된 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재계에서는 대통령이 선례라며 제시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대해 “모범 사례가 아니라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사례”라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이 기금은 과연 어떤 성격이었기에 재계가 이처럼 비판적일까.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농어촌상생기금은 지난 2015년 11월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 때 여·야·정(與·野·政) 협의체가 농어민의 반발을 우려해 만들기로 한 기금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 주도로 만들어졌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다. 한중 FTA로 이익을 보는 기업에서 2017년부터 연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을 기부받아 농어촌 지원에 쓰기로 했다. 당시에도 재계에선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나쁜 제도”라는 거센 비판이 나왔지만, 정치권은 외면했다.
25일 농어촌상생기금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이 기금은 당초 목표액의 30%도 채우지 못한 상태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모은 기금은 총 1164억원. 그나마 한국전력공사 등 공기업이 낸 돈이 852억원으로 전체의 73%에 이른다. 대기업이 낸 돈은 197억원(17%)에 불과했다. 적자가 100조원이 넘는 한국전력공사가 매년 50억원에서 70억원을, 서부·남부·중부·남동·동서발전도 매년 20억원 이상을 냈다. 중견기업 20억원, 중소기업은 1000만원을 냈다.
한 5대 그룹 고위 임원은 “전자제품이나 부품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중국 수출이 이미 무관세로 이뤄졌다”며 “한중 FTA로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고 농어촌과 별 관련이 없는데 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차·롯데 등은 사드 보복 사태로 오히려 중국 사업이 휘청거렸다.
기금 모금 실적이 저조하자, 농어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 때마다 대기업 총수, 최고위 임원들을 증인으로 신청해 이 문제를 따지겠다고 재계를 압박했다. 지난해 국감 때도 주요 그룹 대관(對官) 담당 고위 임원들을 국회로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기금 참여를 독려했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자는 “박근혜 정부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조성과 관련해 대기업이 모두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일정 금액 이상의 기부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등 정치권 요구를 수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농어촌기금의 실패 사례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수혜 기업은 극소수
기업들 사이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이익을 본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플랫폼 기업과 화상 간담회를 갖고 이익 공유제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자,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이익이 나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대표적 코로나 수혜 기업으로 꼽는 쿠팡은 지난해 2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증권가는 추산하고 있다. 배달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도 배달 업체 간 출혈 경쟁으로 지난해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게 증권가 분석이다. 이 회사는 2019년에도 3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인터넷 업체 상황도 비슷하다. 대표 기업인 카카오도 2019년에 수천억원 적자(당기순손실)를 기록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8915억원인데, 전년 동기 대비 불과 1.3% 늘었다. 코로나 특수를 봤다고 하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10대 그룹도 대부분 지난해 코로나로 영업이익이 줄었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0대 그룹 중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증가한 그룹은 삼성·LG·한화 3곳뿐이다. 박원우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코로나로 수혜를 본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어려워진 기업들이 이익을 본 것처럼 보일 뿐”이라면서 “덜 어려워진 기업들이 나서서 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은 자유 시장 기본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