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김범석 이사회의장

IT 업계에는 지난 연말 또 한 명의 ‘이사회 의장’이 탄생했습니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으로 명함을 바꿨습니다. 쿠팡은 “김 대표가 대표이사 업무는 더 이상 맡지 않고, 이사회 의장으로 전략 수립과 혁신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IT 업계에는 ‘이사회 의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창업자가 유난히 많습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방준혁 넷마블 의장,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대표적입니다. 네이버를 만든 이해진씨도 2017년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다가, 글로벌 투자책임자로 직책을 바꿨습니다. 보통 기업에서는 창업자가 ‘대표이사 겸 회장’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IT 업계는 유독 이사회 의장이 많을까요.

IT 회사는 업(業)의 특성상 자율적·수평적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하는데, 이럴 경우 ‘회장’ 직함보다는 ‘이사회 의장’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또 회사 규모가 커지고 직원이 늘어남에 따라 전문경영인(CEO)의 역량이 필요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창업자가 모든 일을 다 총괄할 수 있었지만, 업무가 많아짐에 따라 회사 전반적인 운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게 됐다는 것입니다. 특히 엔니지어 출신인 IT 업계 창업자들은 언론 대응이나 대관 업무 등에 익숙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회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자, 정부·국회뿐 아니라 경찰·검찰 수사기관까지 최고경영자를 부르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각종 기관의 표적이 되는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고 막후에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이사회 의장이 된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것이죠. 실제로 일부 회사에서는 대표이사(집행자)가 대표이사답지 못하고, 이사회 의장(감독자)이 집행자 역할까지 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사회 의장으로 직함을 바꾸는 IT 업계 CEO들의 유행이 막강한 권한은 휘두르면서도 각종 책임과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는 꼼수는 아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