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지난달 스타벅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인 ‘스벅TV’에 깜짝 출연했다. 해당 영상에서 정부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로 소개한 ‘나이트로 콜드 브루’는 영상이 공개된 후 2주간 판매량이 2.5배 증가했다. 또 지난 12월 17일에는 이마트의 공식 유튜브 채널 ‘이마트 live’에 등장했다. 정 부회장이 땅끝마을 해남을 방문해 직접 딴 배추로 전을 부치고, 배추 겉절이를 담그는 등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선보였다. 이 영상은 현재 조회수 120만을 돌파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있다. 또 이 영상 공개 후 이마트 배추 매출은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정 부회장은 지인들을 초청해 직접 요리한 중국 음식을 대접할 정도로 요리실력이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의 등땀, 최태원의 쿡방…진화하는 회장님 PI
최근 대기업 PI(President Identity·최고경영자 이미지)가 진화하고 있다. PI는 각 기업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동안 PI마케팅은 대기업보다는 이름이 덜 알려진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됐다. PI마케팅은 기업의 이미지와 기업을 이끄는 리더 이미지를 연결시켜 기업 홍보에 활용하는 것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CEO 이미지 상승이 매출 등과 직결돼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PI마케팅이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등장으로 격의 없이 소통하는 ‘친구 리더십’이 인정받는 사회적인 분위기 변화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실제로 대기업 PI는 ‘회장님 말씀’을 보도자료 내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타운홀 미팅(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서부터 개별 미팅(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행복토크), 먹방(먹는 방송)·쿡방(요리 방송)까지 시대 흐름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재계에서 PI마케팅이 가장 활발한 곳은 SK그룹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연말 ‘쿡방(요리방송) 유튜버’로 변신했다. 베레모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최 회장은 SK그룹 직원들을 초청해 육개장을 만들어 대접했다. “요리의 최고 꽃은 뭔 줄 알아요? 빨리 안주는거에요. 냄새만 맡게 하고, 배가 고파야 뭐든지 맛있어요.” 최 회장은 이런 농담을 던지며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었다. 또 자식교육 방법에 대해 묻는 직원에게는 “어리더라도 아이가 선택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선택했다는 걸 계속 자각하게 하면 독립적으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더라”고 말한 뒤 “지금은 너무 독립적이라 말을 잘 안듣긴 하는데”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최 회장은 2019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토크’를 100회 가졌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사태로 직접 만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동영상에 종종 등장했다. 사내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라면 먹방’을 찍은데 이어 이번엔 쿡방까지 찍었다. 이같이 임직원들과 적극적인 소통행보에 나서는 최 회장의 모습은 사내 직원들, 특히 젊은 직원들로부터 “회장님이 아니라 옆집 형 같다” “소탈해보인다” “거리감이 많이 없어졌다”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9월 삼성디지털프라자 삼성대치점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진 1장이 재계에서 화제가 됐다. 최신형 TV와 그 앞에 놓인 인테리어 소품을 살펴보기 위해 쪼그려앉은 이 부회장의 와이셔츠는 땀으로 젖었고, 그 모습이 여과없이 담겼기 때문이다. 한 재계인사는 “이병철·이건희 회장 시절에는 몇 번의 사전 연습을 거친 뒤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에서 현장을 방문했고, 전속사진 기사가 촬영을 했기 때문에 삼성그룹 총수 사진이 그런 식으로 언론에 나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사장) 등과 전략회의를 하는 도중에, “직접 현장을 살펴보자”며 갑자기 이 매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별도의 전속 사진사가 없다. 디지털프라자 방문 사진 뿐 아니라 언론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진은 직원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페북·인스타에서 유튜브로 소통통로 확대…돌출발언은 독이 될수도
재계에서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을 성공적인 PI마케팅 사례로 꼽고 있다. 기존에도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적이었던 이들은 최근에는 동영상 등으로 대상을 확대하며 소통 통로를 다양화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일상 소식들을 공개하며 대중들과 소통하는데 적극적이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는 51만 2000여명. 정 부회장이 컨텐츠를 올릴때마다 댓글이 수백개가 달릴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되다보니, SNS에 소개된 상품들은 실제로 고객들이 많이 찾아 매출 증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 정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상품 출시에 맞춰 SNS에 올렸던 ‘이마트 피코크 잭슨피자 시카고 페퍼로니’의 경우 상품 출시부터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 10만개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영향에 힘입어 피코크 피자 카테고리 매출도 전년 대비 66.2%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SNS활동을 통해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박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리하는 모습, 부인·자식·손자들과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봉사활동,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하는 규제샌드박스까지 다양한 내용을 올리고 있다. 특히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규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양한 글과 동영상을 올렸고, 이런 활동이 법안 통과 등 실제 성과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도 최근 자사 유튜브 채널에 브랜딩 강사로 등장해 ‘세일즈 vs 마케팅 vs 브랜딩’ 등을 주제로 현대카드의 브랜딩 철학을 소개했다.
이처럼 PI가 중요한 이유는 최고경영자의 언행과 모습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해당 기업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CEO가 바람직한 철학과 목표를 갖고 경영자로서의 매력을 대외적으로 잘 어필하면 그와 뜻을 함께하는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는 “과거 CEO들은 ‘영웅 페르소나(외적 인격)’를 선호했으나, 최근에는 ‘친구 페르소나’가 각광받고 있다”며 “친절한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친구 페르소나’는 CEO 본인은 물론 기업 이미지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CEO의 부적절한 발언이나 돌출 행동은 신뢰 문제를 낳으며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최근 전세계 기업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국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트위터에 4000만명 이상의 팔로워가 있는 그는 하루 평균 6건 이상의 트윗을 올리며 열심히 활동 중이다. 이렇게 머스크의 ‘1인 홍보체제'가 워낙 독보적이다보니 최근 테슬라는 본사 홍보조직을 없앴다. 일론 머스크는 그러나 한편으론 “테슬라 상장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돌발적으로 밝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조사를 받는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견줄 정도로 정제되지 않은 트윗 활동으로 ‘테슬라의 최대 복병’이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