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옛 현대상선) 노조가 연말까지 사측과의 임금 협상이 결렬될 경우 내년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결의했다. 현재 글로벌 해운업계에선 코로나 사태로 상반기에 감소했던 물동량이 하반기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선박이 부족한 물류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국내 유일 대형 선사인 HMM에서 파업 사태가 발생할 경우 수출길이 막힐 수 있어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8월 부산신항에서 HMM 선박에 컨테이너가 선적되고 있다. HMM 노조가 연말까지 임금 협상이 결렬될 경우 내년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산업계는 자칫 수출길이 막히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HMM

일각에선 2016년 산업은행이 한진해운 파산을 결정해 국적 선사의 선복량(적재 능력)이 크게 줄어든 것도 이번 물류 대란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화학업체 관계자는 “제품을 만들어도 배가 없어 제때 운송하지 못하면 구매처에 배상을 해야 한다”면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수출 중심의 나라에서 미국·유럽으로 갈 수 있는 국적 해운사가 HMM 1곳 밖에 없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HMM노조 97% 파업 찬성

28일 해운 업계에 따르면 HMM해원연합노동조합이 지난 26일 올해 임금 인상 관련 쟁의 행위 돌입 여부에 대해 찬반 투표한 결과 97.3%가 찬성했다. 앞서 노조는 임협에서 진전이 없자 지난 14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제출했고, 지난 23일 1차 조정회의를 벌였지만 합의를 보지 못했다. 31일로 예정된 2차 조정회의에서도 협상이 결렬되면 HMM노조는 내년 1월 1일부터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HMM 소속 직원은 배에서 일하는 선원과 육상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나뉘는데 이들의 임금은 각각 지난 6년, 8년간 동결된 상태다. 노조는 2012년부터 물가지수가 8% 오른 만큼 임금도 8% 인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근거는 회사의 실적이다. 올해 HMM의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4138억원에 달한다. 4분기 해운 업황도 좋아 연간 실적도 2010년 이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할 전망이다. 코로나 사태로 상반기에는 중국 공장 가동 중단, 소비 심리 위축 등 악재가 겹쳤지만 하반기에 경제 활력이 되살아나면서 수입·수출 물량이 급증해 해운 운임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기준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 서안에 4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보내는 운임은 지난해 12월 20일 1342달러에서 지난 25일 4080달러로 급등했다.

노조는 “이렇게 실적이 좋은데도 임금을 찔끔 올려주는 것은 직원들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HMM 측은 “10년간 적자를 봤기 때문에 아직도 회사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라며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하는 데다 내년에도 좋은 실적을 낼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대폭 인상은 어렵다”고 밝혔다.

◇파업하면 연초 수출 대란 현실화

임금 협상이 최종 결렬돼 노조가 1976년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돌입한다면 내년 초 국내 산업계에선 수출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선원법상 운항 중이거나 해외 항만에 기항하는 선박에서는 파업이 불가능하지만 국내에 정박 중인 선박에서는 파업이 가능하다. 선원들이 파업하면 항구에서 선박에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없어 수출이 막힌다.

외국 선박을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중국에서 물건을 꽉 채워 곧바로 미국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중국에서 출발한 선박이 부산에 들러 물건을 싣고 미국으로 향했지만, 최근 중국산 물품의 수출 물량이 폭증해 배에 물건을 실을 자리가 부족해진 것이다. 유럽행 선박도 비슷한 사정이다.

업계에선 2016년 한진해운 파산 결정을 내린 산업은행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당시 한진해운은 HMM보다 선복량이 50% 더 많은 국내 최대, 세계 7위 해운사였다. 그러나 산은이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면서 국내 해운업계의 선복량과 경쟁력이 크게 감소했다. 양홍근 한국해운협회 상무는 “한진해운은 조선업 지원금보다 더 적은 돈으로도 회생시킬 수 있었는데 금융권 논리로 파산을 밀어붙이면서 국내 해운업계가 어려워졌다”면서 “현재 국내 선사들이 배를 풀가동하고 있지만 수출 물량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인 상황이고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측이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