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종업원이 크게 다칠 경우 사업주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징역형을 받거나 5000만원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등이 추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통과되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중대재해법안에 대해 재계가 한목소리로 입법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기업뿐 아니라 영세 소상공인들과 공직자들까지 범죄자로 내모는 독소 조항들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안 처리 강행을 예고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조차 이 독소 조항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음식점·제과점·목욕탕·학원까지 처벌 대상

소상공인들이 가장 반발하고 있는 조항은 ‘다중이용업소 처벌 조항’이다. 국회에 발의된 중대재해법안 가운데 민주당 박주민·이탄희·박범계 의원안과 정의당 강은미 의원안은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하는 사망·상해 사고에 대해서도 해당 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규제를 받는 다중이용업소의 종류는 음식점·제과점·단란주점·영화관·비디오방·학원·목욕탕·게임방·노래방·산후조리원·고시원·골프연습장·안마시술소 등을 망라한다. 이 가게들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이 생길 경우 업주는 최소 2년 이상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은 산업재해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중대재해법안이 통과되면 범법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 위기로 대출금을 갚기 어려워 폐업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종로구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A씨는 “만약 주방에서 화재 사고가 나서 두 명이 부상을 입으면 내가 최소 벌금 5000만원을 내야 한다”며 “당장 다음 달 직원들에게 줄 월급도 없는 처지에 사고 책임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라니 그냥 장사 접으란 얘기 아니냐”고 말했다.

A씨가 말하는 ‘스스로 입증’은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말한다. 사고의 책임이 업주에게 있다는 걸 바로 입증하기 어렵더라도, 과거에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적이 있거나 조사를 방해한 일이 있었다면 업주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재계는 ‘독소 조항’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심지어 여당 내에서도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인명 사고가 났을 경우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아닌 경찰이 곧바로 사고를 수사할 수도 있어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처벌 조항도 논란

중대재해법의 처벌 대상에 공무원이 포함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은 지자체장과 같은 공무원이 산재 예방과 감독을 소홀히 했을 경우 1년 이상 징역이나 3000만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상해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업체의 대표와 공무원, 지자체장, 장관 등이 줄줄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이 한두 곳이 아닌데 공무원들이 어떻게 일일이 사고가 안 날 수 있게 사전에 관리하겠느냐”며 “가뜩이나 주눅 든 공무원들이 책임 없는 자리만 찾아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열린 민주당 의총에서도 다수 의원이 독소 조항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하려 하자 업계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업장에서 중대한 재해를 관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 법안은 매우 포괄적으로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기업 활동을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면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부분은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업 현장에서 직원이 사망했거나 석 달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산업보건안전법보다 우선 적용해 사업주에게 2년 이상 징역형이나 5억원 이상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산업재해에 대한 위험 관리 부족 등 책임을 물어 기업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하는 취지로 이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