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21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 2009년 당시 최대 주주였던 상하이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해 2000여 명이 정리해고 되는 고통을 겪은 지 11년 만에 또다시 존속이냐 해체냐를 가를 벼랑 끝에 몰린 것이다. 쌍용차에는 488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고, 협력사 가족까지 직간접적으로 64만명의 생계가 영향을 받고 있다.
쌍용차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고 공시했다. 쌍용차는 이날 산업은행에서 빌린 900억원, 우리은행 대출금 150억원의 만기가 돌아왔지만 갚지 못했다. 앞서 지난 14일 만기가 도래한 JP모건 등 외국계 은행 3사 대출 600억원도 갚지 못해 연체 중이다. 쌍용차의 연체 원리금은 총 1650억원 규모로 불어났다. 쌍용차의 최대 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은 쌍용차 매각을 통해 자금을 수혈하려 했지만 결국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다만 쌍용차는 이날 3개월간 시간을 벌 수 있는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ARS)을 함께 신청했다. 법원이 채권자의 의사를 확인한 뒤 회생절차 개시를 최대 3개월까지 연기해 주는 제도다. 3개월 내에 쌍용차가 새 투자자를 찾거나, 채권자들이 대출 만기를 연장해줄 경우 법정관리가 개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쌍용차, 3개월 내 운명 갈려
쌍용차 지분 74.65%를 보유한 최대 주주 마힌드라그룹은 그동안 미국 자동차 유통업체 HAAH와 매각 협상을 벌여왔다. HAAH는 쌍용차를 미국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수익을 내겠다며 지분 인수 의지를 밝혀 왔으나, 최근 마힌드라그룹의 쌍용차 지분 대량 매각이 인도 법을 위반하는 문제가 발생해 협상이 난항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가 끝내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쌍용차에 대한 회생 개시가 진행된다. 쌍용차는 1650억원의 대출을 당장 갚을 능력이 없다. 신차 부재 등에 따른 판매 부진으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지난 2007년 이후 딱 한 해(2016년)를 빼고 10여 년간 적자를 이어 왔다. 올해는 코로나발(發) 경기 침체로 1~3분기 영업적자(3089억원)가 지난해 적자(2819억원)를 이미 뛰어넘었다.
쌍용차 직원들은 “2009년 상하이차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냐”며 불안에 떨고 있다.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차는 6000억원을 투자했지만 회사를 정상화하지 못하고 2009년 기습적으로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쌍용차에서 손을 뗐다. 이후 2000여 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고, 노조가 ‘옥쇄 파업’으로 맞서며 노사 갈등이 지속됐다. 상하이차는 투자금을 거의 다 날렸지만, 쌍용차의 디젤차 기술을 빼간 ‘먹튀’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쌍용차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마힌드라도 2011년부터 그동안 투자한 7000억원의 돈을 날리게 된다.
그런데도 마힌드라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마지막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마힌드라가 경영권 포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워크아웃(채권자 협의 구조조정) 수준으로는 쌍용차의 강성 노조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힌드라는 또 법정관리와 ARS를 함께 신청함으로써 채무를 동결한 상태에서 HAAH와 협상할 시간을 벌게 됐다.
◇투자 유치 못 하면, 대규모 구조조정 불가피
현 정부가 마힌드라에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사실상 강요하면서 ‘고비용 구조’를 탈피하지 못한 것이 쌍용차 위기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인도 방문 때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그룹 회장을 만나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 해결을 요청했고, 이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직접 개입해 2009년 해고된 쌍용차 직원들 복직을 압박했다. 그 결과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마지막 남은 46명의 해고자까지 지난 1월 쌍용차에 복직됐다. 직원 평균 연봉 8000만원 이상인 쌍용차는 고용을 줄여야 하는 처지였지만, 오히려 고용을 늘려온 것이다.
투자 유치 실패로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쌍용차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든, 청산이든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어느 쪽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나 법원이 공적 자금 투입 등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