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7일 설립한 ‘LG AI연구원’ 초대 원장으로 44세의 배경훈 상무를 선임했다. LG전자·화학·유플러스·CNS 등 16개 계열사가 참여해 3년간 글로벌 인재 확보, AI(인공지능) 연구 개발 등에 2000여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야심 찬 프로젝트에 연공서열, 직급 등을 무시한 실무 능력 위주 인선을 한 것이다. LG그룹은 또 LG AI연구원 내에 ‘CSAI’(최고AI과학자)라는 직책을 신설해, 세계 10대 AI 연구자로 뽑혔던 이홍락(43) 미국 미시간대 교수를 영입했다. 40대 젊은 연구자들이 새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룹 차원에서 독립된 AI 연구 조직을 두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비교적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 알려져 있는 LG그룹이 AI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경훈 신임 LG AI연구원장은 7일 LG AI연구원 출범을 기념해 열린 온라인 행사에서 "연구원이 AI 연구자들이 다양한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놀이터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LG AI연구원

◇LG그룹 AI사업, 40대 연구원장·최고과학자가 이끈다

배경훈 LG AI연구원 초대 원장은 전자공학 박사로, 비전 인식, 음성, 언어 지능 등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AI 문제를 주로 풀어온 응용 연구 전문가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자율주행, 로봇 프로젝트를 맡았고, 통신사에서 콘텐츠 기반의 AI 기술을 연구하며 언어, 음성, 데이터 지능 등 AI 전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다. SCI급 국제 학술지 15편을 포함해 50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때 SK텔레콤에 몸담았던 그는 2017년부터 LG유플러스에서 AI 플랫폼을 담당하며 신기술 기반의 사업 발굴을 주도해 2018년 연말 인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등 그룹 내 대표적인 AI 전문가로 꼽힌다.

배 신임 원장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인사 체계에 있어 기존의 연공서열, 연차를 아예 없애고, AI 역량만으로 평가해 보상할 것”이라고 했다. AI 연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핵심 인재의 영입이다. 이런 인사 시스템과 평가·보상 체계가 있어야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연구원들이 본인의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로 360도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기 주도적인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LG AI연구원은 이홍락 미시간대 교수를 CSAI(최고AI과학자)라는 직책으로 영입한 데 이어, 내년에도 우수 인재 영입을 계속해 핵심 연구 인력 규모를 100여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계열사 사업별 특성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2023년까지 그룹 내 1000명의 AI 전문가를 육성하는 게 목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이날 축하 메시지를 통해 “최고의 인재와 파트너들이 모여 세상의 난제에 마음껏 도전하며 글로벌 AI 생태계를 중심으로 발전해가도록 응원하고,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가전·배터리뿐 아니라 AI에서도 세계 1등 하겠다”

배 신임 원장은 LG AI연구원의 최우선 과제로 ‘AI 연구를 통해 각 계열사가 갖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그동안 LG는 가전, 통신, 전지, 신약 등 우리 생활과 산업 전반에 걸쳐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서비스에 일부 AI 기술을 활용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앞으로 AI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난제를 해결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LG가 가전, 배터리 분야에서 1등을 했듯이 AI에서도 적어도 한두 분야 정도는 최고의 기술을 보유했다는 인정을 받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최고의 학회에 논문을 발표해 기술력을 인정받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개발한 AI 기술을 사업에 적용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LG는 현재 스마트 팩토리, 배터리 등의 분야에 AI 기술을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또 소재 분야에서도 AI 기술을 활용해 배터리 검수 과정에 필요했던 충·방전 기간을 단축하고,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의 경우 기존 사람이 3년 6개월 걸리던 일을 8개월로 단축하는 등 성과를 내놓고 있다. 배 원장은 “앞으로는 제조·소재 분야뿐 아니라 제품 AI 분야를 보다 강화해 개인 맞춤 추천 등의 기술로 고객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