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26일 현재 총 600여 개인 계열사 전체 임원 자리 중 20%(130개 안팎)를 줄이고, 50대 초반을 계열사 대표이사로 대거 발탁하는 등 대대적인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또 최근 유통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과장급까지 명예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정기 인사가 아닌 긴급 인사를 했던 신동빈(65) 회장이 연이어 조직 축소와 인적 쇄신의 칼을 빼든 것이다. 재계에선 “미래 신사업에 대한 대비가 뒤처진 상황에서 그룹 양대 축인 유통·화학이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자, 신 회장이 변화에 대한 절박감을 느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대적 세대교체… 50대 초반 전진 배치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50대 초반을 계열사 대표이사에 대거 배치했다. 롯데마트 대표에 강성현(50) 롯데네슬레 대표, 롯데칠성 대표에 박윤기(50) 경영전략부문장이 내정됐다. 두 사람은 모두 1970년생이다. 특히 강 신임 대표는 프랑스계 유통회사 ‘까르푸’와 컨설팅 회사인 BCG 출신이다. 공채 출신의 ‘순혈주의’가 강한 롯데에서 외부 출신의 대표이사 발탁은 이례적이다.

롯데푸드 대표이사에는 이진성(51) 롯데미래전략연구소 대표,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에는 황진구(52) LC USA 대표, 롯데지알에스 대표에는 차우철(52) 롯데지주 경영개선팀장, 롯데정보통신 대표에 노준형(52) DT사업본부장이 내정됐다. 대표이사는 아니지만, 그룹 전략을 담당하는 롯데지주의 이훈기(53) 경영혁신실장은 이번에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롯데 관계자는 “이전에 50대 후반이 맡고 있던 자리에 50대 초반 임원들을 발탁했다”며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고, 신사업을 적극 발굴해낼 수 있는 사람을 전진 배치해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지주와 그룹 조직에도 변화가 있었다. 식품BU(사업 부문)장이던 이영호(62) 사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이영구(58) 롯데칠성 대표가 임명됐다.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장은 고수찬(58) 롯데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이 맡는다.

◇임원 100여 자리 줄이고 과장급 명퇴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임원 자리 100여 개를 줄였다. 현재 그룹 임원 600여 명 중 20%를 줄이는 것이다. 롯데 관계자는 “이번에 임원 중 약 30%가 옷을 벗고, 10% 정도를 새로 발탁했다”고 말했다. 인원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롯데는 각 3년이던 전무·상무의 승진 연한을 2년으로 줄이고, 3년이던 부사장 승진 연한은 아예 없앴다. 이전에 신임 임원이 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 보통 13년 정도 걸렸지만, 이제는 8년 정도면 가능한 것이다. 젊은 인재를 과감하게 발탁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롯데의 인사 태풍은 임원급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최근 유통·식품 부문을 중심으로 부장뿐 아니라 입사 10년 차 정도 되는 과장급을 대상으로 기본급 18~30개월치를 조건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임원 인사 후 실무급 인사에서도 조직을 대폭 줄이는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직·인원 쇄신의 배경에는 저조한 실적뿐 아니라, 미래 신사업 부재(不在)에 대한 신 회장의 고민이 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양대 주력 회사인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7%, 롯데케미칼의 영업이익은 85% 줄었다. 더구나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경쟁 기업들이 AI(인공지능)·전기차·배터리·바이오 등 신사업을 하고 있지만, 롯데에는 미래 사업이 없다. 이 때문에 지난 8월 인사에서 그룹 전략을 담당해 온 황각규 전 부회장이 물러났고, 지주회사 조직도 줄였다. 롯데 관계자는 “인사뿐 아니라 사업 부문에서도 대대적인 쇄신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