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 선영에 영원히 잠들었다. 반도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글로벌 1위로 만든 ‘반도체 영웅’의 마지막 출근지는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생산의 본산지인 화성 사업장이었다. 사업장 정문에는 “회장님의 발자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국화꽃을 든 수천 명의 직원들은 화성 사업장 도로에 줄지어 서서 그를 맞았다. 화성 반도체 사업장은 고인이 1983년 이병철 선대 회장과 함께 직접 사업장 부지를 확보하고 착공, 준공식까지 챙길 정도로 애착이 깊은 곳이다. 운구차는 고인이 첫 삽을 뜨고, 생산까지 이뤄낸 반도체 16라인 앞에서 한 차례 정차했다. 방진복을 입은 남녀 직원은 이곳에서 생산한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나와 ‘반도체 거인’의 마지막 출근을 기렸다. 인근 주민들도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28일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에 참석하는 이재용(오른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부축하고 있다. 홍 전 관장은 영결식 유족 헌화 등에서도 힘들어하는 딸 이 사장을 부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에 앞서 삼성서울병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자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한때 이병철 회장의 상속 재산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벌이며 추도식도 따로 가졌던 범(汎)삼성가가 이건희 회장의 마지막 길을 함께 지켜보며 다시 뭉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지하 강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상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맨 앞줄에 앉았다. 삼성그룹과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신세계·CJ·한솔그룹을 이끌고 있는 유족들도 모두 영결식장에 자리했다. 고인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사장과 함께 참석했다. 빈소를 세 차례 찾았던 고인의 조카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영결식에 불참했지만, 대신 아내와 아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참석했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과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띄엄띄엄 앉았지만, 영결식 중간 중간 고인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을 위로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영결식은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의 약력 보고와 고인의 50년 지기인 고교 동창 김필규 전 KPK통상 회장의 추도사, 추모 영상, 유족 헌화 순서로 진행됐다. 추모 영상에서는 1987년 12월 삼성 회장 취임 이후 2014년 쓰러지기까지 변화와 도전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경영인 이건희’, 사물의 본질 탐구에 몰두하는 ‘소년 이건희’, 스포츠 외교와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에 기여한 이건희 등 다양한 모습을 재조명했다. 고인과 함께 일했던 삼성 사장들과 피겨 여왕 김연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도 인터뷰를 통해 고인과의 추억을 공유했다.

전·현직 삼성 사장단은 별도로 준비된 방에서 영결식 장면을 지켜봤다. 평소 이재용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코오롱 이웅열 명예회장, 김동관(한화솔루션 사장)·동원(한화생명 상무)·동선(전 한화건설 팀장) 등 한화그룹 3세 삼형제와 허용수 GS에너지 대표 등 20여 명의 외빈도 따로 준비된 방에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 행렬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살았던 한남동 자택, 이태원동 승지원(承志園) 등을 정차 없이 차례로 돌았다. 이후 화성 사업장을 거쳐 마지막 종착지인 수원 선산에 도착했다. 장지는 부인 홍라희 여사의 뜻에 따라 이병철 선대 회장과 모친 박두을 여사가 묻힌 용인 선영이 아니라 조부가 잠든 수원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전국 각지에 있는 삼성 사옥에는 고인을 기리는 조기(弔旗)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