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는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됐지만, 재계를 비롯한 각 분야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온종일 끊이지 않았다. 평소 기업 삼성이 한국 사회에 미친 공과(功過)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정계 인사들도 이날만큼은 국내 기업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운 경영자를 한뜻으로 추모했다.

26일 각계각층의 인사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사진 왼쪽부터) 정세균 국무총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이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날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재계 인사들은 놀라운 업적으로 우리도 세계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고인을 칭송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조문을 마친 뒤 “삼성에서 같이 일해 보니 고인은 생각이 아주 깊으신 분이었다”며 “그 덕분에 그동안 성공적인 결정을 내려오셨다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고인이 떠난 날은) 가장 슬픈 날”이라며 “친형님처럼 모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후배 기업인들은 세계 변방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 산업계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선배 기업인의 별세에 대해 “안타깝고 애통하다”고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글로벌 큰 기업을 만든 분”이라며 “그런 분을 잃은 것은 대한민국에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위대한 분을 잃어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첫 직장생활을 삼성에서 했다. 신입사원일 때 먼 발치에서 많이 봤다”며 “이건희 회장은 2세 경영진이자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창업자이기도 해 후배 기업가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신 분”이라고 했다. 고인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날 오후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조문했다. 고인의 조카인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과 고인과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도 조문했다.

정·관계 인사들도 이날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빈소를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는 “삼성의 제2 창업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분”이라면서 “대한민국 경제계 위상을 높였고 국가의 부(富)와 일자리를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도 빈소를 찾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세계적 기업을 일궈 국가적 위상과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창의적인 머리로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셨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정원장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도 조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회장 별세 당일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라면서도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논평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빈소에서는 비판을 멈추고 고인을 기렸다. ‘삼성 저격수’라 불리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박 의원은 조문을 마친 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를 드리러 왔다”며 “삼성이라는 기업을 응원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삼성 등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지속 제기해 온 인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고졸 임원 출신 국회의원인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배움이 짧은 저에게 거지 근성으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라고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등 주한 외국 대사들도 빈소를 찾았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고인의 별세를 추모하고자 스위스 로잔 IOC 본부의 올림픽 기를 조기로 게양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