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세상을 떠나기 전 10여 년 동안 순탄치 않은 환경에 둘러싸였다.

이건희 회장이 2011년7월7일 남아공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올림픽 유치가 발표되자 눈물을 흘리며 박수치고 있다./연합뉴스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던 이 회장은 2008년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이 회장은 2009년 12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와 체육계의 건의에 따라 단독 특별 사면을 받은 뒤, 2010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2011년 이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현 정부의 경제 성적표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촌평을 했다. 이후 진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가 불쾌감을 표출하는 등 파장이 일었다.

이 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상속 재산을 놓고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1조원대 소송에서 결과적으로 이 회장은 완승을 거뒀지만, 형제간 다툼에 대한 세간의 평은 좋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14년 1월 2일 “미래를 대비하는 주역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도전하기 바랍니다”라는 신년사를 냈다. 그의 신년사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그해 5월 1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6년 5개월에 달하는 이 회장의 와병 기간 삼성은 많은 풍파를 겪었다.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돼 353일 동안 수감 생활을 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와 관련해 임직원들은 430여 차례 소환조사를 받아야 했다. 삼성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과 관련해 최근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 1심이 시작됐고,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 환송심도 이 회장이 별세한 바로 다음 날(26일) 재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