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고 하니까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996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사장단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이 질책했다. 삼성은 1994년 국내 최초로 경상이익 1조원을 돌파했고, 1995년에는 그 규모가 3조5400억원으로 뛰었다. 세계 경제와 함께 삼성 역시 호황이었지만, 이 회장은 이럴 때 사장들에게 위기를 절감하도록 주문한 것이다.

반도체 공장 방문한 이건희 회장

‘이건희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혁신⋅속도⋅인재 등이 꼽힌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표적인 키워드로 ‘위기’를 꼽는 재계·학계 인사가 적지 않다. 이 회장이 경영의 고비마다 최고의 카드로 꼽은 게 위기였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이건희의 위기 경영이 전대미문의 위기로 꼽히는 코로나 사태에 우리 기업들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건희는 위기 신봉자였다"

지금의 글로벌 삼성을 있게 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1993년 신경영 선언도 출발은 위기 경영이었다. 이 회장은 경영진이 생산량과 판매량에 집중하자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을 오래 보좌했던 한 경영자는 “(이 회장은) 끊임없이 위기를 공유하는 게 경영의 핵심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며 “위기감을 갖고 있는 조직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위기 신봉자 같았다”고 했다.

이 회장이 일찌감치 위기를 절감토록 하면서 삼성은 IMF 외환 위기에 앞선 1996년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유망 사업에 경영력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재구축했다”며 “경영 전(全) 분야에 걸쳐 원가와 경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삼성은 어떤 국내 기업보다 외환 위기를 큰 타격 없이 극복했다. 삼성은 2002년 무역수지 흑자 145억달러를 달성했다. 당시 한국 전체 무역 흑자(108억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쓰러질 때까지 위기 강조했다

이 회장의 위기 경영은 삼성 조직에 체화됐다. 삼성 출신 한 인사는 “삼성 내에서 ‘올해 흑자를 냈다’의 미래형은 ‘허리띠를 졸라맨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1997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일본 전자 소그룹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회장은 단순히 위기만 강조한 게 아니었다. 위기 절감은 곧 속도⋅혁신으로 이어졌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하면서 삼성을 비롯한 기존 휴대전화 생산 회사들은 절벽에 몰렸다. 결국 노키아 등 메이저 업체들이 무너졌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여긴 삼성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고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한 삼성은 결국 2011년부터 스마트폰 세계 점유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쓰러질 때까지 위기 경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전시회(CES)에 참석한 이 회장은 “삼성도 까딱 잘못하면 10년 전 구멍가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며 “턱도 없다.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쓰러지기 7개월 전인 2013년 10월 열린 신경영 20주년 만찬회에서도 “자만하지 말고 위기 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 회장은 우리 기업인들에게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DNA와 함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DNA도 심어줬다”며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금 그의 위기 경영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