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품 기업들이 글로벌 전기차 부품 공급망을 전부 장악할 수 있다.”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발전포럼’에서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장은 “자동차 산업 대전환기로 ‘뉴 커머(새로운 경쟁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정 회장이 언급한 ‘뉴 커머’는 중국이다. 과거 내연기관차 시대 미국·유럽·일본에 밀려 존재감이 없던 중국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면서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8월 전 세계 전기차 누적 판매량을 보면 상위 10개 업체 중 4곳이 중국 기업이다. 완성차뿐만 아니다. 배터리, 전기 모터, 열 제어 부품 등 중국의 여러 부품업체가 테슬라·폴크스바겐·제너럴모터스(GM) 등 주요 자동차 기업들에 전기차용 부품을 납품하며 경쟁력을 쌓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崛起)’는 경쟁자인 한국 자동차 산업에 큰 위기다. 현재 한국 자동차 부품업계는 미래차 생산 체제로의 전환율이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은 “국내 부품업체의 체계적인 미래차 전환 전략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100% 중국산 테슬라 나올 수 있다"

지난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0% 중국산 테슬라 ‘모델3’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부품 제조 기업의 성장으로 미 테슬라 차량의 모든 부품이 중국산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인 테슬라는 배터리는 ‘CATL’, 열 제어 부품은 ‘저장싼화’ 등 중국산 부품을 상당수 공급받고 있다. 조만간 전기 모터도 중국 부품업체 이노밴스 테크놀로지로부터 공급받을 예정이라고 알려진 상태다.

테슬라만이 아니다. 폴크스바겐과 GM,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 모기업) 등 전 세계 주요 자동차 기업이 중국 전기차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국내 완성차 회사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쌍용자동차는 오는 2022년 출시 예정인 전기차 ‘U100’ 생산을 위해 중국 1위 전기차 제조업체 BYD와 전기차용 부품 공급을 받을 수 있을지 논의 중이다.

◇한국 부품업계 미래차 전환율은 16.8%

중국산 전기차 부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는 반면, 한국 부품업계는 기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부품으로의 생산체제 전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 9월 중순부터 한 달간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185곳을 대상으로 ‘미래차 대응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기차나 수소차 등 미래차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곳은 16.8%에 불과했다. 40.2%의 기업은 전환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연구원이 올해 국내 1차 부품업체 831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는 더 심각하다. 전장(전자장비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102곳으로 12.2%에 불과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장을 못 하면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면서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전장 부품 경쟁력은 한참 부족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일본 도요타자동차만 해도 1차 협력사 800여개 중 지난 5년간 전장부품 업체로 바꾼 업체는 300여개에 달한다. 한국 부품업계 전체가 도요타 협력사 전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국내 많은 부품업체가 미래차 생산체제 전환을 꺼리는 이유는 관련 부품 개발과 생산에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미래차 관련 부품 개발에서 양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2.8개월, 비용은 평균 13억1500만원이 들었다. 조사 대상 기업의 62.9%가 자금 부족을 호소했다.

이날 포럼에서 국내 부품업계는 사실상 테슬라나 중국 전기 버스에 퍼주기만 하는 전기차 보조금 대신 이런 생산 투자 측면을 고려한 세심한 정책 지원을 주문했다. 개발과 양산에 드는 평균 시간을 고려해 최소 6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등 특별 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거나 금융권이 직접 투자하는 ‘미래차 투자 펀드’ 조성 같은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조사 대상 기업의 56.8%가 내부 보유 자금으로 투자비를 충당하고 있었고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 자금 활용은 14.8%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