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17년 6월 제52회 발명의 날 행사에서 소재·부품기업 동우화인켐의 황인우 대표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줬다. 반도체용 고순도 화학물질의 국산(國産)화를 이끌고, 반도체 재료 분야의 기술을 선점했다는 공로였다. 동우화인켐은 사명(社名)만 보면 한국 회사 같지만, 일본의 스미토모화학이 지분 전량을 보유한 외국 기업이다. 작년 7월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포토레지스트(반도체용 감광액) 생산 회사이기도 하다. 동우화인켐은 지난해 2조67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5년과 비교하면 23.4%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투자는 22.7% 줄었고, 직원 수도 감소했다. 한국에서 연간 조(兆) 단위 매출을 올리지만 정작 고용·투자에는 인색한 것이다.

정부가 고용 창출을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서까지 외국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외국 기업은 돈 버는 데만 급급해 한국에서 재투자와 고용 창출에는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우리 정부가 여러 혜택을 주면서까지 외국 기업 유치에 목매는 이유는 고용 창출을 위해선데 정작 외국 기업은 혜택만 누리고 고용과 재투자는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서 5조 버는 벤츠, 고용은 267명

본지가 24일 경영 정보를 공개한 외국계 기업 매출 상위 30곳(한국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경영에 관여하는 곳은 제외)의 2015~2019년 경영 실적을 분석한 결과, 매출과 영업이익·순이익은 급증했지만 고용·투자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기업의 매출(합계)은 2019년 93조6939억원으로, 2015년(82조9685억원)보다 12.9%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7.9%와 96.7%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고용은 5506명(8.5%) 감소했고, 투자(유·무형자산 순 취득액)도 5.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세데스벤츠의 한국 법인인 벤츠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이 2015년보다 73% 늘어난 5조4378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3% 급증했다. 하지만 벤츠코리아의 직원은 267명이고, 작년 투자는 55억원이다. 국내에 전시장 59개와 서비스센터 70여개가 있지만 모두 협력사(딜러)가 운영한다. 벤츠에 한국은 중국·미국·독일·영국에 이은 5번째 큰 시장이지만 재투자에는 인색한 것이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인 볼보코리아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은 24%, 영업이익은 147% 늘었지만 투자·고용은 각각 45%와 10% 감소했다.

소니코리아가 작년 한 해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6억5000만원이다. 소니코리아는 일본 본사에서 1조3500여억원어치의 물건을 들여와 한국에서 매출을 올렸지만 직원 수는 202명이다. 한국에서 매년 조(兆) 단위의 부품을 파는 일본 무라타의 한국 법인도 한 해 투자 규모는 8억원이다.

한국 기업보다 턱없이 적은 투자 규모다. 예컨대 1조100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리는 상장사인 국도화학은 작년에 722억원을 투자했다. 벤츠와 볼보, 소니, 무라타의 투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3배 이상 많다.

◇'체리피커' 외국 기업

외국 기업의 한국에 대한 투자·고용 무관심은 국내 30대 기업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 30대 기업(매출 기준)의 경영 현황을 집계한 결과 작년 매출은 706조6352억원, 영업이익은 32조2400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1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6% 줄었다. 많이 팔았지만, 수익은 나빠진 것이다. 하지만 30대 기업은 이 기간 2만7415명(19.6% 증가)을 더 채용했다. 투자도 5.7% 늘렸다.

재계에선 “외국계 기업에 만연한 체리피커(cherry-Picker·체리만 골라 먹듯 혜택만 챙기고 할 일은 안 하는 것)를 그대로 두고 보는 정부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외국 기업에 혜택을 많이 주면 알아서 고용과 투자가 늘 것이란 막연한 기대에 매달리지만 정작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더게이츠와 일본 니타가 지분 전량을 보유한 한국게이츠는 지난 7월 법인을 폐쇄했다. 지난 10년간 매년 40억~100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외국 대주주가 하루아침에 회사문을 닫으면서 직원 15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데도 회사 대표는 “아무 말도 않겠다”고만 하는 등 회사 폐쇄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한 국내 대기업 임원은 “외국 기업은 한국 시장을 ‘현금 인출기’로만 인식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국내 기업을 차별하면서까지 외국 기업에 여러 혜택을 줬지만, 그들이 한국 경제에 이바지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서 고용과 투자를 늘리도록 규제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혜택만 누리는 체리피커가 되지 않게 방지책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