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소형 SUV 트랙스를 생산하는 한국GM 부평 2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갑자기 멈춰 섰다. “GM 본사로부터 신차 생산 배정을 받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보자”는 노사 협의에 따라 라인 생산 속도를 시간 당 28대에서 30대로 높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부 노조 대의원이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라인을 세운 것이다. 부평 2공장은 이틀 간 가동이 중단됐다.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최근 지인에게 “생산 차질이 또 빚어지면 한국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 배경에는 이 같은 막무가내식 노조가 있다. GM 본사는 올 상반기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만 해도 한국GM 공장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GM 글로벌 공장이 모두 문을 닫았는데, 한국만 정상 가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조가 또다시 파업을 벌인다면, “한국은 역시 노조 때문에 안 된다”는 불신이 뿌리 깊게 박힐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GM 본사는 1년마다 임금 협상으로 빚어지는 노조 파업을 한국GM의 가장 큰 리스크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GM 노조는 올해도 어김없이 파업 절차를 밟고 있다. 24일 중앙노동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노조는 언제든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노조는 기본급 12만원 인상과 성과급 22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6년 간 3조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사측은 “올해 170만원, 내년 200만원의 성과급”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소식지에서 “고작 170만원”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한국GM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진 도급 직원들의 ‘불법 파견’ 소송 30여 건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많은 제조업체가 ‘하도급법’에 따라 조립 작업 일부를 하청업체에 맡겼는데 2015년 무렵부터 제조업에서의 ‘사내 하청’은 본사 지시를 받는 ‘불법 파견’이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도급 직원들이 “직고용해달라”(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직고용했다면 받았어야 할 월급을 더 달라”(체불 임금 지급 소송)고 나서고 있다.
한국GM은 “고용부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왔고, 이후 법은 달라진 게 없는데, 판단이 바뀌어 위법 혐의를 받게 됐다”면서 “신의칙 원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결은 아직 안 나왔지만, 1~2심에서는 대부분 패소했다. 한국GM은 이들을 직고용할 여력이 없어 그냥 버티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이런 판결에 기대 한국GM에 2018년 폐쇄된 군산공장 도급 직원 148명을 포함한 1700여 명의 도급 직원들을 직고용하라고 명령했다. 군산 공장 폐쇄 당시 한국GM은 정규직만 3000여명을 희망 퇴직시켰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명령이 아무 대안 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GM은 매년 50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내다가 지난해 3000억원까지 줄였고 올해는 어떻게든 손익분기점을 넘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올해(1~8월)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경직된 고용 시스템을 기업들이 견뎌왔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한계 상황으로 내몰려 다같이 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항구 자동차부품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 상황에서 불법 파견 소송 비용까지 계속 증가하면 GM 입장에선 결국 철수를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