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지난 9일 배럴당 119달러를 넘겼던 유가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돌연 “전쟁 마무리 수순”이라고 하고 G7(7국)은 전략 비축유 방출 논의를 한다는 소식에 하루 만에 20달러쯤 떨어졌다. 이에 10일 코스피는 5.35% 오른 5532.59에 마감했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26.2원 떨어진 1469.3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이란 전쟁의 전망은 아직 안갯속에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 수출을 1리터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고 친이란 세력이 규합하는 등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이지호 한국은행 조사국장, 정규철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송영관 KDI 선임연구위원,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금융실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 등 경제 전문가 7인에게 한국 경제가 받을 영향을 긴급하게 물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예측 불허가 경제 리스크 문제로 변했다”며 “유가가 높은 수준에서 계속 출렁이면 올해 성장률이 1%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유가 출렁임이 고유가 못지않게 위험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말 때문에 하루 사이 급락한 국제 유가에 대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유일호 전 부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 불허라는 점이 문제”라며 “미국도 적당한 선에서 전쟁 비용을 아끼고, 이란도 어느 정도 굴복하는 시나리오가 좋지만, 4주 안에 어느 쪽이 완전 승리하는 식으로 결론이 나기는 어렵다”고 했다.
윤상하 KIEP 실장은 “고유가도 문제지만 80~90달러대 이상 가격대에서 크게 출렁이는 것도 문제”라며 “높은 유가 변동성으로 기업·가계는 불안감에 투자를 미루거나 소비를 줄이게 된다”고 했다. 국제 유가가 비싸도 안정이 되면 경제 주체들이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지만, 가격이 출렁이면 ‘지켜보자(wait and see)’는 심리 탓에 경제 전체가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정규철 KDI 실장은 “전쟁이 진정되더라도 생산 시설 복구나 물류 정상화에 시간이 걸려 당분간 60달러대로 빠르게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올해 성장률, 1%대로 주저앉을 수도
한국 경제 성장에 유가 리스크가 특히 치명적이라는 평가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원유 의존도(국내총생산 대비 원유 소비량)는 5.63배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유가 상승 시 물가 상승 압력에 더 쉽게 노출되고,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아 다른 나라보다 타격이 크다”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연평균 유가가 80달러 안팎을 기록할 경우, 한국의 성장률은 0.1%포인트 내려간다. 100달러까지 오르면 하락 폭은 0.3%포인트까지 확대된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이 2.0%인데, 이는 유가 64달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고유가·고환율로 물가가 뛰고, 경기는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해 한국 경제를 힘들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호 한국은행 국장은 “유가가 오르면 휘발유·경유 가격만 뛰는 게 아니라 운임료나 곡물 등 식료품 가격 등이 광범위하게 가격 인상 압력을 받고, 경상수지도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 공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있다. 송영관 KDI 선임연구위원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정책 공조가 강하게 작동했다”며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