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달러 가치가 치솟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정성에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흐름과 더불어, 중동 지역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교역로가 막히자 미국산 원유·LNG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중동 정세가 바뀔 때마다 20원씩 널뛰기를 이어가며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5일(현지 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블룸버그 달러 현물 지수는 이번 주 들어 전주 대비 1.42% 상승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작년 11월 이후 최대 상승세다. 블룸버그는 “미·이란 사태로 인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되면서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유로와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등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99.07을 기록하며 99대로 올라섰다. 특히 이란이 바레인 정유 시설과 쿠웨이트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을 공격했다는 소식 등으로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면서 달러인덱스는 한때 99.4까지 치솟기도 했다. 다만 장 막판 백악관이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상승 폭을 줄였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8.5% 오른 배럴당 81.01달러에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최고 수준이다.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 역시 배럴당 85.41달러로 전장 대비 4.93% 상승했다.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달러 가치는 더욱 치솟게 된다. 중동 지역 원유와 LNG를 수입하던 국가들의 현실적 대안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카타르가 전쟁 발발 직후 가동을 중단한 라스라판(Ras Laffan)과 메사이드(Mesaieed) 산업단지 등 주요 LNG 생산 시설을 복구하는 데 한 달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산 LNG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스카일러 몽고메리 코닝 블룸버그 마켓 라이브 전략가는 “미국이 순 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하면서 시장이 재편되었고, 달러는 충격 흡수 장치에서 증폭 장치로 바뀌었다”며 “이제 유가가 높아지면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달러화 강세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처럼 달러 가치가 뛰어오르면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널뛰기를 이어가고 있다. 6일 오전 2시 야간 종가 기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82.2원으로 이틀 만에 1480원대로 올라섰다. 4일 야간 종가가 1485.7원, 5일 야간 종가는 1462.9원이었다. 매일 중동 지역 전황이 바뀔 때마다 20원씩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6일 주간 시장 개장 가격도 1479원으로 1480원에 근접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원화 가치가 더욱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크다. 한국은 중국·인도·대만·파키스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카타르에서 LNG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중동 지역 원유 의존도도 70%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동 에너지 공급이 막히면, 미국산 에너지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 국제에너지정책센터의 앤 소피 코르보 연구원은 지난 1일 “LNG 시장에서 카타르 등 중동발 공급이 차단될 경우 미국·호주·캐나다의 신규 프로젝트 물량만이 이 거대한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