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뉴스1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에 대응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나서면서 유가가 국제 경제의 ‘태풍의 눈’이 된 양상이다. 국제 유가가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장기적으로 고물가 상황 속 경기마저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까지 나온다. 반면 미국이 그간 석유 생산량을 대폭 늘려왔던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국제 유가 변동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 반론도 제기된다.

◇세계 경제 뇌관 된 유가

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보좌관인 에브라힘 자바리 소장은 이란 반관영 ISNA통신을 통해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을 불태울 것”이라며 “이 지역에서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의 20%가량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그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계 원유 시장에서 큰손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 전면 봉쇄를 천명하면서, 국제 유가 불안정성은 커졌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3일 국제 유가를 전망하면서 “미국과 이란 간 분쟁이 1~2개월 안에 마무리되는 경우 WTI 가격이 배럴당 90달러 수준까지 오를 것”이라면서도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고, 주변국으로까지 분쟁이 확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WTI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2일 기준 서부텍사스유(WTI) 4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71.23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6.3% 올랐는데, 향후 상승 폭이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물가도 빠르게 뛰어오를 우려가 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ING 수석 국제 경제학자 제임스 나이틀리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 도달할 경우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달러에서 약 4.5달러까지 오르면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1.5%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고 봤다. 이처럼 물가가 상승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가능성도 더욱 떨어지게 된다. 재닛 옐런 전 재무장관은 “최근 이란 사태로 인해 연준은 금리 인하에 더욱 주저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 간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글로벌 투자사 PIMCO의 전 CEO인 모하메드 엘-에리안은 급등하는 보험료와 회항 또는 항로 변경을 하는 화물선, 그리고 항공 교통 차질 등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하며, “세계 경제를 강타할 새로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라고 했다.

◇중동 석유 의존하는 동아시아 국가들 비상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큰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NHK에 따르면, 도가노 유키 일본종합연구소(JRI)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최악의 경우 원유 수입을 중동에 의존하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3%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의 경우 비축분이 넉넉하다고 하지만,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원유 공급 불안과 가격 급등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석유 수입량의 70%를 중동에 의지하고 있어, 한동안 비축분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유가가 주는 경제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경제는 (글로벌 분쟁과 같은) 그런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드물다”며 “만약 그 요인이 장기화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노무라의 선진 시장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세이프 역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유가의 급격한 변동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