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전용 카드 하나만 들어주세요.”
이상금(64)씨가 태블릿 PC를 오른손에 들고 서울 천호동에 있는 자그마한 횟집에 들어섰다. 가게 주인 김모(64)씨는 손님 두 명이 주문한 음식을 내놓은 뒤, 이씨 앞에 앉았다. 김씨는 태블릿 PC로 세 종류의 신용카드를 설명했고, 이씨는 고민 끝에 하나를 골랐다. 김씨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이씨에게 알려줬고, 가입을 끝냈다.
김씨는 신용카드 가입자를 모으는 ‘카드 모집인’이다. 2000년대 초반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자, 이 직업에 뛰어들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한 달 수입이 400만~500만원에 이른다. 김씨는 “2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쌓아온 인맥 덕에 지금도 벌이가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갈수록 일이 힘들어지고 있다”며 ‘세콤’에 막히고, 개인 정보에 민감한 사회 변화를 그 이유로 꼽았다.
◇늙어가는 카드 모집인, 50대면 청춘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업 8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비씨카드)의 모집인 수는 3324명이다. 카드 업계가 최고 호황기를 누렸던 2002년 3월 말에는 12만명을 넘었지만, 이후 카드 대란을 겪고, 금융 당국이 길거리 모집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시행하면서 줄었다. 그래도 1만명 선을 유지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유행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1만명 선(9217명)이 무너졌다. 이후 매년 2000명 넘게 줄면서 지금은 3000명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대신 카드 모집인의 평균 연령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신금융협회가 해마다 선정하는 우수 카드 모집인의 평균 연령을 보면 지난 2017년에는 50세였는데, 작년에는 57.9세로 8살이나 늘었다. 심지어 80세가 넘어도 카드 모집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카드 모집인 가운데 50세면 청춘이나 다름없다”며 “비교적 젊은 사람들 가운데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카드 모집인이 거의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콤에 막히고, 해킹 사고에 휘청
이처럼 카드 모집인 수가 줄어드는 것은 카드사들이 대면보다는 온라인 영업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기준 신용카드사의 온라인 발급 비율은 약 57%이다. 불과 10년 전(2015년)만 해도 이 비율은 6% 정도에 불과했다. A사의 경우 고객 상담 절반 이상을 인공지능(AI)으로 대체했고, 카드 발급부터 마케팅, 리스크 관리까지 모두 디지털로 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도 있지만, 젊은 세대 중심으로 대면 접촉보다 온라인에서 직접 혜택을 비교해 발급을 선호하는 것도 디지털 영업에 나서는 이유”라고 말했다.
집집마다 보안이 강화되고, 점점 개인정보에 민감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카드 모집인 감소의 이유로 꼽힌다. 사람을 만날 환경도 아닌 데다, 만난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선뜻 주민등록번호 같은 개인정보 공개를 꺼리는 분위기 때문이다. 이씨는 “옛날 같으면 아무 사무실이나 들어갈 수 있었고, 아파트에 들어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카드 하나 들어달라고 해도 주민등록증을 선뜻 보여줄 정도로 영업하기 좋았는데, 요즘은 아파트를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보안이 엄격해지고, 사무실마다 세콤 같은 보안 장치가 설치돼 있어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20여 년 동안 카드 모집인으로 활동하는 유성자(64)씨는 “얼마 전 롯데카드 해킹 같은 사고가 터지면 고객들이 더욱 움츠러들기 때문에 갈수록 영업이 어려워지고 특히 처음 본 카드 모집인에게 개인정보를 주는 것을 더욱 꺼리다 보니 새 고객 유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달에 1500만원 벌던 시절도… “그래도 계속할 것”
그렇다고 카드 모집인 벌이가 적은 것은 아니다. 김씨처럼 오랜 기간 인맥을 쌓아온 사람들은 월 400만~500만원은 벌어들인다고 한다. 보통 카드 1장을 유치하면 5만원 정도 수입이 남는데, 이씨의 경우 한 달에 100건 안팎을 새로 유치한다. 그는 “오랜 기간 이 일을 하면서 300명 정도 인맥을 쌓아두고 있는데, 이들이 소개해주는 사람들로부터 새로 고객을 받고, 기존 고객들이 카드를 새로 만들거나 갱신하면 또 수입이 생긴다”며 “정말 고객들을 정성으로 대하고, 세심하면서도 끈질기게 영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2010년대 중반에는 경기도 좋았고, 개인정보에 민감해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한 달에 1000만원 넘게 벌기도 했다”며 “지금도 벌이가 나쁘지 않다. 걸어 다니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