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지수 전광판.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증시의 가장 오래된 벤치마크인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5만 고지(高地)’를 밟았다. 지난 1년 가까이 뉴욕 증시를 지배해 온 인공지능(AI) 열풍이 주춤하는 사이, 탄탄한 실적을 앞세운 경기 순환주와 소비재 종목으로 매수세가 확산하는 ‘거대한 로테이션(Great Rotation)’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심’이 이끈 5만… 디즈니의 부활

디즈니랜드

지난 6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일보다 2.47%(1206.95) 상승하며 5만115.67을 기록했다. 지난 1896년 지수 출범 이후 130년 만에 처음으로 5만 포인트를 돌파한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기술주 매도세 속에서도 다우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시장의 주도권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이날 다우존스 지수 5만 시대를 이끈 건 엔비디아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전통의 강호’ 디즈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우지수는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30개의 우량 블루칩 종목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 가운데 중하위권 종목으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이다. 그런데 지난 2일 발표한 작년 4분기 실적에서 매출 259억8000만달러(약 36조원)를 기록해 시장 예상치(257억4000만달러)를 웃돌았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흑자 전환과 테마파크 수익성 회복에 힘입은 것이다.

특히 다우지수는 주가 가중 방식(주가가 더 높은 종목이 지수에 더 큰 비중을 차지)으로 지수가 산출되는데 중하위권 종목인 디즈니가 상승하면 전체 지수가 하락 압력을 받을 때 버팀목이 돼 왔다. 최근 주가가 높은 주식들이 전체 지수를 끌어올리는 동안 디즈니가 밑바닥을 지탱하며 다우지수 5만 시대의 지지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폭스비즈니스는 “물가 상승 우려 완화와 함께 디즈니와 월마트 같은 소비자 중심의 우량주들이 지수 상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기술주 중심의 장세를 넘어 시장의 저변이 확대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세계 최대 건설 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도 다우존스 지수 상승에 한몫했다. 캐터필러는 전 세계 건설 현장과 광산에 장비를 공급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의 풍향계’로 불리는 기업으로 지난달 29일 발표한 작년 4분기 실적 결과 매출이 172억달러로 예상치보다 0.3% 높았다. 비록 실적 상승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기술주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자금을 캐터필러 같은 전통 산업재 종목들이 받아낸 것에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이 기술주 이외의 종목을 찾으면서 다우 지수는 올해 다른 지수들보다 나은 성과를 보였다”며 “이러한 움직임이 견고한 경제의 수혜를 입는 산업재 섹터로 시장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이번 상승장을 두고 업종 내 ‘다른 종목들의 주가도 상승하는 현상(건강한 순환·Rotation)이 나타나는 장세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난 10개월간 증시를 끌어올린 빅테크 쏠림 현상이 해소되며, 자금이 산업재와 소비재 등 실물 경제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1위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의 100t짜리 수송 트럭. /이윤정 기자

척 칼슨 호라이즌 인베스트먼트 서비스 CEO는 “최근 증시를 이끄는 동력은 AI 등 특정 기술주에만 머물렀던 자금이 시장 전반으로 넓게 퍼지는 확장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고, 배런스는 “대형 기술주가 약세를 보이는 동안, 다우지수가 확실한 ‘상대적 강세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며 “다우지수와 그 구성 종목들이 보여준 견고한 기술적 강세에 힘 입었다”고 분석했다.

반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지난 3일부터 사흘 연속 1% 이상 하락하며 뚜렷한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고 있지만, 뚜렷한 수익 모델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CNBC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AI에 잠식될 것이라는 공포와 과도한 설비 투자에 대한 우려가 기술주 투매를 불렀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