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김성규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이모(30)씨는 전남 광양의 한 제조업체에 다닌다. 서울에 정착하려 했지만, 높은 취업 문턱에 꿈을 접었다. 이씨는 오전 7시 30분 출근하는데, 오후 6시에 ‘칼퇴’하는 날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다. 격주로 주말 근무도 한다. 근무 강도가 세지만 월급은 300만원 남짓이다. 그나마 이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주변 친구들 중 여전히 백수거나 200만원 겨우 넘는 월급을 받으며 야근하는 경우도 많다. 이씨는 “여기 남으면 도태된다는 인식이 친구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

서울 등 수도권 청년들이 폭등하는 아파트 값을 보며 중장년 세대와의 ‘자산 크레바스(좁고 깊은 틈)’에 절망할 때, 지방 청년들은 그보다 더 심각하게 대·중소기업과 지역 격차라는 ‘이중 격차’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작은 직장이지만 지금 다니는 곳이 문을 닫지는 않을지, 살던 지역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등이 이들 눈앞에 놓인 걱정거리다. 지역의 경쟁력과 특색이 사라진 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중심이 수도권에 집중된 불균형 속에 지방 청년들 사이에선 “2등, 3등 국민이 된 것 같다”는 자조가 나온다. 대구의 한 회사에 다니는 김모(35)씨는 “지방 청년들은 자산 격차보다 더 넘기 어려운 서울·지방 사이의 ‘기회 격차’에 좌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기업 90% 수도권 집중

청년들이 지방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을 지방에선 보기 어렵다. 30대 기업 중 수도권 밖에 본사를 둔 기업은 포스코(포항), 중흥건설(광주), 하림(익산) 등 3곳 정도다. 부산·대구·대전·울산 등 주요 광역시에도 30대 기업 본사가 한 곳도 없다. 서울에만 전체의 70%(21곳)가 있고, 경기·인천에 각각 5곳, 1곳이 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만 전체의 90%가 몰려 있는 셈이다.

수도권에 주요 기업이 편중되면서 업계에선 ‘인재 남방(南方) 한계선’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청년 인력이 네이버·카카오·HD현대 등이 있는 경기 성남 판교를 비롯해 삼성전자 등이 있는 수원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으려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지방에선 건실한 중견·중소기업조차 들어가기 어렵다.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24년 매출액 기준 국내 1000대 기업 중 750곳(75%)이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 공공기관, 공무원을 비롯해 지방은행 등 일부 금융권을 빼면 청년이 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 지방에 내려가지 않는 데는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기업들은 지방에는 효율적인 생산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호소하고 있다. 수도권은 여러 협력 업체를 비롯해 데이터 센터, 전력·통신·교통망 등의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지방은 이런 인프라가 부족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인프라나 물류 같은 밸류체인이 잘돼 있으면 기업은 가지 말라고 해도 지방에 갈 것”이라고 했다.

◇일자리 찾아 지방 탈출 러시

지방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살아남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20·30대 인구가 5만명 넘게 늘어나는 동안, 부산(-7200명), 대구(-4700명), 광주(-8000명) 등 주요 광역시를 비롯해 경북(-1만700명), 경남(-8500명), 전북(-6000명) 등에선 줄줄이 청년들이 빠져나갔다. 청년들의 지방 이탈 추세로 인해 19~39세 청년들의 수도권 인구 비율은 2015년 52.4%에서 꾸준히 올라 2024년 54.8%를 기록했다. 전체 국토 면적의 12%밖에 안 되는 수도권에 청년 10명 중 6명쯤 사는 것이다.

수도권·지방 청년 간 격차는 과거보다 크게 벌어지고 있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지방에선 지방 거점 국립대 출신이 지역의 큰 중견 기업에 들어가 중산층을 형성했다. 하지만 ‘인(In)서울’ 쏠림으로 지역 인재가 대거 유출됐고, 이는 곧 지역 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지방 산업 육성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지방에 분산시키지 않으면 지역 소멸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