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노보텔 앰버서더 호텔 미팅룸에서 SB 세커 바이낸스 아태 총괄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세커 총괄은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 토큰화를 가상 화폐 업계 ‘메가 트렌드’로 짚으며, “한국도 규제를 정비하면 가상 화폐 허브 국가로 도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장경식 기자

“어느 산업이든 자신들이 가장 환영받는 곳에 머물고 싶어 하기 마련이고, 산업이 환영받는다는 건 규제가 명확하다는 뜻이에요.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먼저 가상 화폐 사업자에게 라이선스를 주면서 선발 주자로 나섰고, 홍콩이 뒤따랐습니다. 최근에는 UAE가 가상 화폐 생태계 구성원 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사업을 허용하는 ‘풀 스펙트럼 라이선스’를 제공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우예요. 가상 화폐 사업자들이 UAE로 몰려드는 이유입니다.”

세계 최대 가상 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SB 세커(Seker) 아태 지역 총괄은 최근 WEEKLY BIZ 인터뷰에서 “가상 화폐 선도 국가의 핵심은 결국 규제 완비”라며 이같이 말했다. 규제가 명확해야 어떤 기술을 도입하고 어떤 제품을 출시할지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상 화폐 제도화를 추진하는 한국이 가상 화폐 ‘허브’ 국가로 도약하지 말란 법도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거대한 이용자 기반 위에 정교한 규제 체계가 결합돼, ‘가드레일이 잘 갖춰진 고속도로’가 뚫린 시장”이라며 “여러 가상 화폐 기술을 안전하게 테스트하고 발전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했다.

그는 싱가포르 법무 자문관, 앤트그룹 금융·법무 책임자 등을 지낸 금융 분야 전문 변호사로, 작년 9월 바이낸스에 합류했다. 그를 가상 화폐 세계로 이끈 건 가상 화폐 시장의 바이블로 꼽히는 ‘비트코인 백서’였다. 비트코인 설계자 ‘나카모토 사토시’가 발표한 9쪽 분량의 논문으로, ​그는 여기서 금융 패러다임 전환을 엿봤다고 했다. 셰커 총괄을 만나 가상 화폐 시장 전망과 한국의 현주소 등을 물었다.

◇“스테이블코인·토큰화는 ‘메가 트렌드’”

-올해 가상 화폐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분명한 ‘메가 트렌드’가 존재한다. 먼저 스테이블코인은 카드나 현금 같은 결제 수단을 빠르게 대체할 것이다. 작년부터 스테이블코인은 개인 단위를 넘어 기관과 기업의 자산 관리 영역으로도 빠르게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기존에 깔려 있던 카드나 QR 코드 결제망 위에 스테이블코인 결제 기술을 얹는 점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작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거래액은 33조달러에 달했다. 세계 최대 전자 결제 회사인 비자(VISA)의 작년 연간 결제 금액(14조2000억달러)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다. 올해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외에는 어떤 분야가 유망한가.

“실물자산 토큰화도 하나의 메가 트렌드다. 부동산이나 담보부 채권 등 실물자산은 가치가 매우 높지만, 일정 규모 이상으로만 거래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실물자산을 토큰으로 변환해 작은 규모로 쪼개서 판매할 수 있다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정부와 인재들이 달라붙어 실물자산 토큰화에 나서고 있고, 바이낸스와 같은 거래소에서 실물자산 토큰을 거래하게 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본다.”

-널뛰는 가상 화폐 가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가상 화폐가 다른 자산보다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가상 화폐를 이용하려는 이들은 가격 차트만 보고 거래를 결정하기보다는, 가상 화폐마다 기술력과 범용성 등 ‘펀더멘털’을 따져봐야 한다. 바이낸스는 이용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가상 화폐 상품을 다양화하고,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며, 규제 당국과 협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 작년 10월 가상 화폐 가치가 폭락했을 때 4억달러 규모의 자체적인 보상 프로그램인 ‘투게더 이니셔티브’를 통해 이용자 보상에 나섰다.”

◇“아태 시장은 규모·자본·적응력에 장점”

-가상 화폐 시장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강점은 무엇인가.

“우선 순수하게 시장 규모가 매우 크다. 게다가 소득이 정체된 서구 선진국과 달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개발도상국들은 소득이 늘면서 투자 여력도 계속 커지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모바일 뱅킹과 QR 코드 결제에 발 빠르게 적응하는 등 금융 인프라 ‘도약(Leapfrog)’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현재는 개인 단위에서만 거래가 활발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향후 기업과 기관들의 가상 화폐 거래가 열리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가상 화폐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에 걸쳐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금융 자산 분야에서 규제는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영역이다. 바이낸스는 전체 직원의 20% 이상을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 전문가로 채용하고 있다. 해킹 등 사고를 막기 위해 기술적 보안에도 주력하고 있다. 규제를 수용하고 준수하는 게 이용자 이익을 보호하고, 산업을 안정적으로 끌어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의 경우 규제 도입까지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있는데.

“좋은 제도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한국은 최근 ‘가상 자산 2단계 입법안’을 통해 가상 화폐 수탁부터 계좌 신원 확인, 시장 집중도 완화 등 다양한 규제 요소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규제 당국자와 법률가로 일했던 제가 볼 땐 매우 긍정적인 흐름이다. 규제가 마련되고 난 다음에는 성장이 뒤따를 것이다. 현재 한국 거래소를 통한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650억달러에 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기업을 포함한 기관 투자는 어떠한가. 향후 기업 투자가 열리면 가상 화폐가 한국 자산 시장에 완전히 정착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유통 지원도 열려 있어”

-한국 시장에서 바이낸스의 계획은 무엇인가.

“바이낸스가 인수한 한국 거래소 고팍스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게 1차 목표다. 그러려면 한국 이용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다. 고팍스의 가상 화폐 예치 서비스인 고파이가 고객들이 맡긴 돈을 상환하지 못한 채 잠겨 있는데, 바이낸스는 최대한 빨리 고파이 미상환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고파이 미상환 자금을 별도로 보관한 지갑을 공개했다. 다음으로는 당국에서 추진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도 지원할 계획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어느 기관이 발행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유통·결제·정산 등 흐름마다 인프라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바이낸스는 이를 지원할 의향이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