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대기업 과장 안주용(37·이하 가명)씨가 직장 생활 2년 차에 접어든 시점은 주택 대출 규제가 완화되고 초저금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4년 가을이었다. 연 1~2%대 저금리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회사 내 선배들을 보며 월급의 절반 이상 저축하기 시작했다. 서울 외곽에 있는 부모 집에 얹혀살며 4~5년간 1억원쯤 모으면 대출을 일으켜 3억원대 서울 강북권 10~2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은 안씨 편이 아니었다. 7000만원쯤 모았던 2017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70%였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집값 대비 대출 한도)을 40%로 낮추는 등 대출을 옥죄기 시작했다. 신용 대출까지 받아도 5억원에 육박한 강북 아파트에 대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입)’에 나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수도권 도심의 내 집 마련 문턱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성실히 일하고 저축해도 제자리를 맴도는 안씨 같은 청년들이 속출하고 있다. 젊은 시절 ‘하우스푸어(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 꼬리표를 무릅쓰고 10억~20억원대 ‘똘똘한 한 채’ 보유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지금의 40·50대와 달리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된 요즘 청년들은 중산층 진입을 위한 거대한 문턱 앞에서 기약 없이 방황하고 있다.
◇대출 규제에 길 잃은 30대
서른이 된 2019년 안씨는 독립했다. 전세금 9000만원짜리 6평 원룸에 들어가 다시 돈을 모았다. 3년 뒤인 2022년 정부가 다시 대출 규제를 풀었지만 서울 강북 아파트 평균 가격은 10억원대로 올라선 상태였다.
결국 안씨는 36세이던 지난해, 결혼과 함께 경기도 외곽에 2억5000만원짜리 17평 전세 아파트에 들어갔다. 그해 들어선 새 정부가 대출을 다시 조였기 때문이다.
안씨는 “부모 지원을 받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금수저 또래들보다 시대를 잘 만나 주거 사다리 막차에 올라탄 흙수저 선배들이 더 부럽다”고 했다. 같은 회사 김희준(47) 부장이 이런 경우다. 그는 2009년 아내와 함께 모은 1억원을 들고 전세 낀 4억원짜리 서울 마포 20평대 아파트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에 나섰다. 후배 안씨가 원룸 생활을 시작한 30세에 1주택자가 됐다. 현재 18억7000만원인 이 아파트를 자산이 3억원인 안씨가 사려면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한 대출 한도인 4억원을 다 빌려도 11억7000만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세후 연봉 8000만원을 한 푼도 안 쓰고 15년 가까이 모아야 한다. 기대하긴 어렵지만,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는 엄청난 요행이 따라야 작년 평균 당첨금 실수령액인 14억원을 받아 겨우 마련할 수 있다.
김씨는 9년 뒤인 2018년 대출을 더 끼고 9억원대 중반 40평대 경기 성남 분당 아파트로 갈아탔다. 현재 이 아파트 시세는 24억원을 넘나든다. 대출 3억원을 빼도 20억원대 자산을 갖게 됐다. 김씨는 “더 영끌해서 서울 강남에 진입하지 못한 게 아쉬울 때가 있지만, 후배들 앞에선 티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안씨도 10년 차 미만 후배들 앞에서는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전셋집 마련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취업도 어려운 20대
스타트업 인턴을 거쳐 2021년 입사한 같은 회사 박도준(31)씨는 6년 차인 지금도 보증금 2000만원, 월세 60만원짜리 10평 월세에 살고 있다. 입사 당시 이미 수도권 평균 4억원을 넘어선 아파트 전세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입사 2·3년 차 때 불거진 수도권 빌라 전세 사기 사태까지 겹쳐 빌라 전세도 접었다. 그는 “여자친구와 돈을 모아 서울 외곽의 10평대 아파트라도 사려 했지만 지난해 대출 규제로 계획이 틀어졌다”고 했다. 이런 박씨도 “경기가 나빠져 취업하지 못한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생각하면, 전셋집 마련이라도 꿈꿀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