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에 나선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규모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2년 말 ‘챗 GPT’ 등장으로 촉발된 인공지능(AI) 혁명이 발생 3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AI 산업은 기술 경쟁을 넘어서 ‘자본 전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미국 기업들의 AI 투자 과정에서 부채 조달 사례가 급증하면서 금융시장 안정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마존 등 5개 기업 ‘회사채 발행 러시’, 1210억달러의 빚내

미국 4대 빅테크 기업인 애플, 구글, 아마존, 메타가 모두 미 정부와 반독점 소송을 벌이게 됐다. 왼쪽부터 팀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제프 베이조스 창업자 겸 회장,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2일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 증권 등에 따르면, 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소위 ‘AI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클라우드·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5개 기업은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1210억달러(약 175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평균 발행액(280억달러)을 4배 넘는 수치다. 오라클의 경우 지난해 9월, 단일 건으로 18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이들 기업은 향후 3년간 연 1400억달러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잠재적으로는 그 규모가 연간 3000억달러도 넘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 기업이 막대한 현금을 보유했음에도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주가 하락을 막고,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어서다. 경제 매체 네오피드는 “유상 증자처럼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보다 채권 시장 접근을 선호하는 것은, 기존 주주들의 가치 희석을 피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금 혜택을 누리겠다는 의도도 있다. 부채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는 이익에서 제외돼 법인세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이들 기업의 신용 등급은 대부분 최우량(AAA~AA)이어서 채권 발행 비용(금리)이 낮은 점도 회사채 발행에 적극 나서는 이유로 꼽힌다.

◇“닷컴 버블 혹은 2008년 위기 올 수도“… 수익성 검증해야

그래픽=양인성

문제는 이 같은 채권 발행이 금융시장 전반의 수급 균형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채권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장기물 금리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AI 기업들이 장기 투자를 위해 만기가 긴 채권을 주로 발행함에 따라 국채·우량 회사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고, 이로 인해 다른 일반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까지 밀어 올리는 이른바 ‘구축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금은 빚을 내는 기업이 부담하는 추가 이자(스프레드)는 아주 낮은 수준이지만, AI 기업들이 갑자기 많은 채권을 발행할 경우 이자가 치솟으며 금융시장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금융센터도 “시장 참가자들은 개별 기업의 재무 리스크보다 대규모 채권 발행이 회사채 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려는 주가와도 연계된다. AI 기술이 투입된 비용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느냐는 논의로 이어지면서 ‘AI 버블론’으로 옮겨붙고 있다. 영국의 ‘매크로이코노믹 서베이’의 제임스 퍼거슨 파트너는 “AI는 비용이 많이 들고 전력 소모가 심하며 환각 현상 등의 문제가 여전하다”며 현재의 AI 열풍의 결말은 2008년 금융 위기와 비슷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도 “투자자들은 AI에 쏟아부은 수십억 달러의 막대한 자금이 실제 수익과 이익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동부 뮐루즈에서 촬영된 구글·애플·메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GAFAM) 로고. /AFP=연합뉴스

실제 지난달 29일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우려로 주가가 하루 만에 10% 폭락하며 이틀간 시가총액이 약 3800억달러가 증발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당장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불안을 야기할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재무 구조가 취약한 일부 AI 기업 회사채들을 중심으로 크레디트 시장의 불안이 확대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주요 AI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은 양호한 상황이지만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