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좋은데, 왜 내 주식은 이렇게 땅굴만 파는 걸까요?”

“대주주가 승계를 앞두고 있어서 주가 부양에 소극적이에요.”

코스피가 5000을 돌파하며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고 있지만, 모든 투자자들이 웃는 건 아니다. 주가가 제자리 걸음 중인 저평가 주식 투자자들은 오히려 더 큰 소외감에 한숨 짓고 있다.

저평가 주식은 통상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인 기업을 말한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BPS)로 나눈 지표다. PBR이 1배 아래라는 것은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모두 처분하고 사업을 청산했을 때의 가치보다도 현재 주가가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론적으론 사업을 계속하는 것보다 당장 회사 문을 닫는 것이 주주 이익 측면에서 낫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기준 코스피 상장사 807곳 가운데 66%가 PBR 1배 미만에 머물렀다. 1년 전(70%)과 비교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33%), 미국(2%), 유럽(13%)과 견줘보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왜 유독 한국 증시에 초저평가 기업이 이처럼 많은 걸까. 이재명 대통령은 일명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도입해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李 대통령 “주가 누르기 방지법, 당장 추진” 지시

“상속세를 아끼려고 주가를 억지로 낮춰 놓다니... 최대한 신속하게 개정하겠습니다.”

코스피가 5000을 사상 처음 돌파한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내용의 글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 관련 게시글을 공유했다.

지난 22일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 대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글을 인용하면서 올린 메시지./X 캡처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란, 상장사 주가가 지나치게 낮더라도 과세 기준을 순자산가치의 최소 80%로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신 최대주주에게 적용되던 20% 가산세율은 폐지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상속·증여 시점 전후 각 2개월간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를 산정한다. 회사 실제 가치와는 상관이 없다.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낮을수록 세 부담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실적이 양호한데도 주가가 장기간 낮은 수준에 머문 기업을 두고, 시장에서는 “승계를 앞두고 절세하려고 주가를 관리하지 않거나 억누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상속·증여세 괴리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절세 효과가 있기에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걸까.

이소영 의원실은 지난해 3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세 아들에게 한화 지분 11.32%를 증여한 사례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당시 그룹 지주사격인 한화는 주가가 4만원 수준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7배에 불과한 초저평가 상태였다.

이소영 의원은 “증여 당시 한화는 자본총계(순자산)가 40조원에 달했지만, 시가총액은 4조원대에 불과해 현행법상 증여세로는 약 2966억원만 부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만약 비상장 회사였다면 순자산 기준이므로 증여세는 약 1조7000억원에 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영 의원은 지난해 말 상장한 명인제약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 의원은 “특수관계인 지분이 95.3%에 달하고, 40년 동안 비상장 상태였던 회사가 지난해 봄부터 갑자기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며 “이미 보유 현금만 2777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추가 자금 조달을 이유로 상장에 나선다는 설명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 최대주주(76세)의 승계 시점과 맞물린 상장이라는 점에서 증여세 절감 의도 등 여러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승계와 세제가 만든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세금 산정 방식이 달라서 승계 과정에서 주가 관리 유인이 작동한다는 점을 개선하려는 취지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대표는 “한국 상장사의 약 95%에는 지배주주가 존재하며, 이들은 통상 승계 5~10년 전부터 주가 관리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며 “거래가 활발하지 않고 기업설명회(IR)에도 소극적인 저PBR 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승계가 이미 진행 중이거나 이를 앞두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법이 개정돼 상장사의 상속·증여세 산정 시 최저 하한선이 PBR 0.8배로 설정될 경우, 의도적인 주가 누르기 관행은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PBR 1배 미만 기업이 줄어든다면, 한국 증시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권 내 ‘주식 고수’로 알려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후보 시절, “PBR이 0.1~0.2배에 불과한 상장사들이 있는데,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해 신속히 청산해야 한다”며 “이론적으로는 10배 남는 장사인데도 시장 질서를 흐리는 기업들은 반드시 정리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 증시 사정에 밝은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주가 누르기 방지법’ 법안 설명을 들은 뒤 김용범 정책실장에게 즉시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물론 상장사의 PBR이 1배 미만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배주주가 승계를 앞두고 주가를 의도적으로 누르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한 운용사 대표는 “공장 부지나 생산 설비 등 유형자산 비중이 큰 제조업의 경우 구조적으로 PBR이 낮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본업에서 충분한 이익을 내지 못해 시장으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과 경제 구조가 유사한 일본에서는 공개적인 ‘PBR 1배 미만 해소’ 압력이 실제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3년 도쿄증권거래소는 PBR 1배 미만 상장사를 대상으로 기업가치 제고 방안 마련을 공식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주주로부터 맡은 자본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한 결과가 낮은 PBR이라는 인식이 시장 전반에 확산됐다. 이후 ‘PBR 1배 초과’를 경영 목표로 내세우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