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로 집계됐다.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은 ‘쉬었음’ 2030 청년이 71만7000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비슷한 상황은 20년 전 일본에서 먼저 발생했다. 버블 경제가 붕괴된 이후인 1993~2004년 사회에 나왔던 1700만명의 ‘취업 빙하기 세대’(就職氷河期世代)다.
최근 한국은행은 우리 청년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본 빙하기 세대의 경험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청년기에 취업을 제대로 못한 이들의 상당수가 그대로 중장년이 되면서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낮은 성장률, 취업난·비정규직화, 결혼·출산율 하락‘ 닮은꼴
한은은 ‘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 영향 평가’ 보고서에서 “일본의 취업 빙하기 세대는 장기 경기 침체로 인한 고실업 시기를 겪은 후 생애 전반에 걸쳐 고용 불안정, 소득 감소 등 부정적 영향을 경험한 세대로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일본 빙하기 세대는 1990년대 초중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 사이에 학교를 졸업해 지금 4050대가 된 이들이다. 이들이 10대 시절을 보낸 1980년대까지 일본 경제는 연평균 4%대 성장했으나, 1990년대 들어 성장률이 1%대로 급락했다. 1997년에는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쳤다. 일본 고용 시장에도 한파가 불었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한 시점인 2020년 무렵부터 ‘쉬었음’ 청년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2010년대 각각 4.9%, 3.5%였던 우리나라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2020년대 들어 1.8%로 떨어졌다. 지난해 성장률은 1%를 기록해 5년 만에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신규 채용을 보류·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대기업 62.8%가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이 없다’고 답했다. 정부 고용 플랫폼 ‘고용24’를 통한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0.39에 불과했다.
일본과 한국은 모두 괜찮은 일자리인 정규직이 줄어드는 상황도 겪었다. 일본 기업들은 취업 빙하기 기간 중 평생 고용을 보장하는 형태의 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고용을 빠르게 늘렸다고 한다. 지난해 8월 기준 우리나라 2030 비정규직 비중도 31.7%로, 2004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또 일본 ‘빙하기 세대’와 한국 ‘쉬었음 세대’는 결혼을 기피해 출산율이 하락하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선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파라사이또 싱구르’(parasite single·기생 독신자)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전업 자녀’란 용어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청소·빨래·설거지 등 집안일을 하면서 부모에게 용돈을 받고 사는 청년들이다.
◇ 중년의 빙하기 세대, 日 정부 “1966년생 신입 공무원 뽑습니다”
한 세대가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면 국가 경제 전체에 중장기적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노동 투입이 줄어 생산성이 감소하면서 잠재성장률 자체가 저하될 수 있다. 취업을 제대로 못한 이들의 소득 감소는 세수 감소와 사회보장 지출 부담 확대로 이어진다. 결국 재정이 악화하는 연쇄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빙하기 세대는 현재 중년층이 되어서도 저임금 문제를 겪고 있다. 2012~2017년 일본 전체 일반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6600엔 증가할 때 취업 빙하기 세대인 40~44세와 45~49세의 임금은 되레 각각 3500엔, 9400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이들이 청년 시절 잦은 이직을 반복하며 사내 교육을 통한 역량 축적의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빙하기 세대가 청년일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일본 정부는 뒤늦게 중년이 된 이들을 대상으로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는 지난해 6월 “취업 빙하기 세대가 중년으로 진입하면서 노후 빈곤·주거 불안·가계 취약 같은 문제가 미래 위험이 아니라 현실 과제가 됐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일본 인사원(人事院)은 최근 “1966년 4월 2일~1986년 4월 1일생을 대상으로 150명 뽑는 2026년도 국가공무원시험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퇴직할 나이에 가까운 빙하기 세대에게 마지막 취업 기회라도 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