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증시 고점론, 거품론도 나오지만, 나만 뒤처질까 불안해하며 뒤늦게 증시로 뛰어드는 포모(FOMO)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9년 전 ‘저축에서 투자로’를 외치며 투자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던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가 이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투자가 ‘15배 수익’ 전망을 낳으면서 박 회장의 남다른 투자 선구안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 증시는 AI가 끌어가는 장세
-경기는 안 좋은데 주가는 왜 이렇게 오르나.
“AI가 이끌어가는 시장이다. 지금은 전체 지수가 아니라 잘나가는 섹터를 봐야 하는 시장이다. 한국, 미국, 중국 다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섹터별 차별화가 심화할 것으로 보고 섹터 ETF에 집중해야겠다고 판단해 2018년 섹터 ETF가 특화된 자산운용사 글로벌X를 인수했다.”
-요즘 증시를 보면 어떤 미래상이 떠오르나.
“AI 혁명은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뀔 때 속도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경제, 사회, 정책 전반의 사고 전환이 시급하다. 삼성이 세계 1등 스마트폰을 만든 것처럼, 반도체 팹리스, 시스템 반도체, 로보틱스 등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국가와 기업이 적극 투자해야 한다. 향후 엔지니어링 인재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에셋도 공대 출신 인재를 파격적으로 선발해 우대하려고 한다.”
-지금 반도체 섹터에 투자하면 늦나.
“삼성전자, 하이닉스는 여전히 유망하고, 중국 반도체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 미국, 한국, 중국 반도체 ETF에 투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주산업도 각광받을 것이다.”
◇투자 결정할 때 창업자 본다
-스페이스X 투자 대박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투자 결정을 했나.
“투자를 결정할 때 창업자를 중시한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통해 지상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데, 스페이스X는 우주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경쟁자도 별로 없는 유니크한 혁신 기업이다. 인프라 투자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익원을 끊임없이 창출하는 바탕이 된다. 자율주행에도, 도심 항공 택시(UAM)에도 우주 통신망이 필요하다.”
-일론 머스크의 인공지능 사업체 xAI에도 투자했다는데.
“머스크의 비즈니스엔 세 가지 큰 축이 있다. 지상과 우주에 하드웨어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이 각각 있고, 하드웨어 구동을 뒷받침할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xAI가 소프트웨어 담당 기업이다. 그의 사업은 세 축을 중심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스페이스X와 xAI 투자에서 미래에셋 고객들이 1조5000억~2조원 정도 이익을 낼 것 같다.”
◇실물자산 토큰 투자 생태계 구축할 것
-디지털 자산 자산거래소 사업체를 인수한다는데, 왜 인수하나.
“미국 로빈후드(주식·암호화폐를 수수료 없이 거래하는 혁신적 투자 플랫폼)가 유럽에서 S&P500을 토큰화해 24시간 거래하고 있다. 나도 로빈후드처럼 ‘토큰화’ 비즈니스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단순한 암호화폐 거래를 넘어, 투자자에게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토큰 비즈니스 모델을 제공하고 싶다.”
-토큰 비즈니스가 뭔가.
“앞으로 실물 자산 토큰화(RWA·Real World Asset)가 투자 업계의 새 키워드가 될 거다. 증권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변할 거다. 우리나라에서 벤처 투자가 어려운 게 7년 이상 발이 묶이고 출구 전략이 어렵기 때문이다. 벤처 투자금을 토큰화해 거래를 활성화하면 창업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 1조2000억원 규모의 고객 자산을 온체인화해, 24시간, 어떤 블록체인 위에서도 안전하게 거래·운용할 수 있는 투자 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비트코인은 어떻게 보나.
“하나의 자산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가격 변동성은 클 것이다. 앞으로 진화된 금융 기업, 구글 등이 (비트코인을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환율 해법은 산업 경쟁력 키우기
-고환율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산업 경쟁력 저하, 과도한 부채와 부채 증가 속도, 중국의 기술 굴기, 미국에 대한 과도한 투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외에 거의 모든 분야 산업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어 투자자들이 원화보다는 달러 투자를 하고 싶어 한다. 달러를 풀어 막을 수 없고,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고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기업, 산업 경쟁력을 더 키우려면.
“지금 한국은 ‘기업 경쟁력=국가 미래’가 훨씬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구간에 들어와 있다. 규제, 세제 구조가 그 연결 고리를 상당 부분 훼손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부채 의존도가 높았다가 외환 위기 이후 ‘저레버리지, 현금 비축’ 기조로 급격히 회귀하면서 내부 캐시 플로우(보유 현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투자 구조를 갖게 됐다. 대기업들이 몇 개 주요 사업으로 전문화하고, 대규모 자본 조달을 통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똑같이 이런저런 사업을 다 하는 선단식 경영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룹 간에 소통과 양보가 필요한데, ‘지주회사 체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가 왜 문제인가.
“기업이 합종연횡 과정을 거쳐 합병을 하면 일부 지분만 보유하게 되는데, 현행 지주회사 체제에선 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을 50% 이상 가지게돼 있다. 인수합병을 원천적으로 막는 꼴이다. 지주회사 체제에선 자본조달도 어렵다.”
-왜 그런가.
“신사업에 투자하려면 증자가 필요한데, (중복 상장 논란으로) 증자가 어렵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스페이스X, xAI 등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지주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주사 대신 ‘3단 지배 구조’가 해법
-그렇다면 기업 지배 구조 대안은.
“우리나라에선 창업자가 CEO가 되고, CEO가 이사회 멤버가 돼야 책임 경영이라고 하는데, 낡은 생각이다.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는 CEO도 아니고, 일론 머스크는 이사회 멤버도 아니지만, 전략적 의사 결정을 잘하고 있다. 나는 CEO도 아니고 이사회 멤버도 아니지만, 글로벌 투자 전략가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전략 부문이 약하다. 나는 대주주-이사회-CEO가 역할을 분담해 서로 보완하는 3단 지배 구조가 지금 시대에 더 맞다고 본다.”
-평소 분산 투자를 강조해왔다. 정답은 뭔가.
“지금은 미국이 잘나가지만 중국을 투자 대상에서 빼선 안 된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싼 인건비를 찾아서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했지만, 별 재미를 못 봤다. 그사이 중국은 로봇으로 인력을 대체하고, 산업별 클러스터 조성으로 생산성을 대폭 높였다. 중국 공장을 그대로 두고 중국 기업들처럼 효율을 높였으면 동남아시아 이전보다 더 성공했을 수도 있다. 인도의 성장세도 무서울 정도다. 세계 증시 시가총액 10%(현재 3~4%) 선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제조업은 여전히 잠재력이 있다. 분산 투자 관점에서 보면 한국, 미국, 중국, 인도를 4분의 1씩 가져가는 게 좋다고 본다.”
◇부동산은 끝물, 우리는 팔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사회 불평등, 양극화의 주요인 중 하나가 부동산 정책의 실패다. 한국 부동산은 지금이 피크라고 본다. 미래에셋은 부동산을 팔고 있다. 옛 대우증권 본사 건물(미래에셋 여의도 사옥)도 팔았고, 2조원짜리 판교 테크원타워 빌딩도 팔았다. 요즘 아파트 값이 오르는 건 지난 10년간 공급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임대 아파트를 대량 공급해야 한다. 땅이 없다는데 서울 종로 2가부터 쭉 가면 전부 2~3층 건물뿐이다. 서울은 산이 많고 한강변도 있는 등 녹지가 충분해 임대 아파트를 대량 공급할 수 있다.”
-금 투자는 계속 유망한가.
“지난해 처음으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투자액이 달러 투자액을 넘어섰다. 달러가 불안하니까 금을 사고 있는 거다. 미국이 달러 지위를 지키려고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키우고 있는데,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성공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속·광물·에너지 시장도 유망해 보인다.”
◇공대 출신 신입 파격 우대하겠다
-최근 5년간 잘한 일을 꼽자면.
“1조5000억원가량을 비상장 자산으로 투자를 확대한 점, 미래에셋 경영진의 세대교체 성공, 인도 증권사 인수, 호주 자산운용사 인수 등을 꼽고 싶다. 주가를 보면 시장이 이 점을 인정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고객의 부가 증가할 때, 구재상 회장(미래에셋 창업 공신) 등 미래에셋 후배들이 나가서 성공했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요즘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일은.
“기존 투자금 회수로 향후 4년 내에 10~14조원 정도의 투자금이 마련될 것 같아 새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투자 제안을 받고 있다. 봐야 할 자료가 너무 많아 눈에 다래끼가 날 정도다.”
-재단 2곳을 운영 중인데.
“재단을 하나 더 만들지 생각 중이다. 핵심 산업인 IT나 바이오 전공 학생을 위한 장학재단, 세계 유수 대학교수를 고액 연봉을 주고 모셔 오는 걸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까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다.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전면 개혁이 필요하다. 창의적 인물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 부모가 자식에게 사색의 공간을 주는 문화, 공대 출신이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에셋은 우수한 공대 출신 신입 직원에게 연봉 1억원, 해외 파견 등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려 한다.”
☞박현주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월급쟁이 증권맨으로 일하다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창업했다. 창업 후 30년도 안 돼 1000조원이 넘는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미래에셋금융그룹으로 키웠다. 현재 ‘GSO (Global Strategy Officer), 글로벌전략가’라는 직함으로 그룹의 투자와 전략을 지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