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뒷쪽 가운데)이 지난 12월 11일 기획재정부 새해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각종 정책 펀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2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 2026년도 업무 보고에서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날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첨단산업에 투자하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켰다. 국민 세금과 국유재산 등을 재원으로 활용해 국내외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수익도 내겠다는 발상이다. 하지만 정권 출범 때마다 만들어지는 정책펀드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사후 관리가 제대로 안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정권이 끝나면 흐지부지되는 바람에 국민들이 혈세 투입의 효과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쏟아지는 정책펀드

이재명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대형 정책펀드는 ①국민성장펀드 ②한국형 국부펀드 ③한·미전략투자기금 ④전략수출금융기금 등 크게 4가지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5년간 집중 투자한다. 정부보증채권 75조원과 민간자금 75조원을 합쳐 150조원으로 조성된다. 정부는 이 자금을 인공지능 30조원, 반도체 21조원, 모빌리티(교통수단) 15조원, 바이오·백신 12조원, 2차전지 8조원 등으로 나눠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전체 자금의 40% 이상은 지방에 투자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할 방침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한국형 국부펀드는 국가 전략 분야에 장기 투자한다. 현재 국내 유일한 국부펀드는 1997년 외환위기 교훈에 따라 2005년 설립된 한국투자공사(KIC)이다. 다만 한국투자공사는 주로 정부와 한국은행이 맡긴 외환보유액을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에 기능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국내 투자와 다양한 분야의 장기 투자가 가능한 새로운 국부펀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구 부총리는 “적극적인 국부 창출을 위해서는 부동산이든 첨단산업이든 바이오든 가리지 않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필요한 재원은 상속세 물납 제도 등을 활용해 정부가 보유한 비상장주식이나 다른 국유재산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월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새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뉴스1

한·미전략투자기금은 미국과의 3500억달러 투자 합의에 따른 결과이다. 정부는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신설해 이 기금을 운용할 예정이다. 외환보유액 운용 수익과 해외에서 달러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미국에 연간 200억달러 범위에서 투자금을 보내고, 조선업 협력과 관련된 투자의 보증이나 대출 업무도 할 예정이다.

전략수출금융기금은 한국 기업들의 세계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이다. 수출입은행 등이 수출업체들의 보증 등 금융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투자요소를 개발해 수익을 낸다는 전략이다. 수익금은 국내 수출 관련 업체에 다시 투자하는 형태가 검토되고 있다.

정부 출범 때마다 새로운 펀드

정부 출범 후 정책펀드가 나온 것은 이재명 정부가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와 민간이 함께 재원을 투입하는 20조원 규모의 국민참여형 뉴딜펀드를 만들었다. 녹색성장을 내걸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배당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는 형태로 민간 부문의 녹색성장펀드 조성을 장려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 각지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는데, 지역 센터에서 창조경제혁신펀드를 만들어 운영했다. 이름은 달랐지만 정부 자금을 마중물로 삼아 민간 자금을 끌어들여 기업들의 창의와 혁신을 유도한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9월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오른쪽)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김지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펀드 조성 취지도 전임 대통령들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정부의 직접 투자 비율이 크고, 이에 따라 투입되는 국민 세금도 막대하다는 점이다. 국민성장펀드의 절반인 75조원은 사업이 계획대로 안 될 경우 고스란히 재정 부담이 된다. 국부펀드도 물납 세금이나 국유재산을 재원으로 출발한다. 한·미전략투자기금은 정부의 채권 발행이 필요하고, 전략수출금융기금도 재정자금이나 재정보증이 동원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에 전년보다 8.1%나 늘어난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씀씀이는 키워놨는데 재정 수입이 뒷받침되지 못해 적자 메우기용 국채를 110조원 발행하기로 했다. 결국 정부가 이렇게 늘어난 나라 빚의 일부를 동원해 대규모 ‘빚투’에 나선 셈이다.

“눈먼 돈 수백조원 노려라”

역대 정책펀드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투자수익률이 종합적으로 관리되지 못해 국민들이 정책 효과를 검증하기 어려웠다. 둘째, 정권이 끝나면 새 정부가 정치적 치적을 위해 새로운 이름의 펀드를 내놓으면서 전 정권 펀드는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셋째, 펀드를 운영하기 위한 조직이 퇴임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일자리로 전락했다. 넷째, 운영을 위해 비슷한 공기업을 새로 만들 경우 조직 운영비가 중복 지출되고, 설립 목적이 달성되어도 조직을 없애기 쉽지 않았다. 그 결과는 국민 세금 낭비였다.

한국의 유일한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가 최근 기관투자자들과 인도 테크기업 투자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모임./한국투자공사

전문가들은 주식 투자 경험이 많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재정과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을 담보로 대대적인 ‘빚투’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대도박인 만큼 성패에 따라 국가 재정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어떻게 혈세 낭비를 줄일 수 있을까? 금융 전문가들의 제안은 이렇다.

첫째, 펀드 전체를 통합해 하나로 만들고 실명 관리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 역점을 두고 수익률 관리를 하도록 펀드 명칭에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을 넣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묻자는 것이다. 예컨대 가칭 ‘이재명 정부 성장 펀드’로 통합한 뒤 그 안에서 필요에 따라 여러 분야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둘째,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조직 운영비를 절감하기 위해 하나의 기구에서 통합 관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치적 욕심에 새로운 공기업을 만들기보다는 법률을 개정해 기존의 한국투자공사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일단 새로운 조직을 만들면 나중에 없애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국민들이 투자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투자수익률을 매일 공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코스피200이나 미국 S&P500 주가지수를 비교 기준으로 삼아 제시하면 국민들이 ‘이재명 펀드’의 성과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정책펀드의 투자수익률을 국내외 대표 주가지수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4월 뉴욕증권거래소 내부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의견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규모 빚을 감수하며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상황이라 정치권과 경제부처의 자기 몫 챙기기가 심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책펀드 운영 과정에서 짭짤한 수수료 수입을 챙기는 금융회사와, 망하면 안 갚아도 되는 횡재를 노리는 벤처 사기꾼이 가세한다. 금융시장과 벤처업계는 벌써 “주인 없는 눈먼 돈 수백조 원이 쏟아져 들어온다.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며 군침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