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혁명 시대에 절실한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돕기 위해 금산 분리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음에도,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금산 분리 완화는) 최후의 카드”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뉴스1

금산 분리는 대기업 등 산업 자본이 금융회사를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다. 예컨대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지주회사 산하에 투자회사(GP)를 두고 직접 펀드를 조성하는 게 금지돼 있다. 앞서 지난달 초 이재명 대통령은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를 만난 이후, AI(인공지능)와 반도체 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돕기 위해 금산 분리 규제 완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주 위원장은 지난 21일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첨단 전략 산업 투자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처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투자 활성화 방안 중 하나가 금산 분리라면 검토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번 돈을 재투자하거나 금융으로 투자금을 조달하는 등 다른 대안이 있다면 왜 먼저 이를 고려하지 않느냐”며 “수십 년 된 금산 분리 규제의 틀을 바꾸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 외부 자금 모으기에 앞서 기업의 자기 자금 우선 투자 방침을 제시했다. 하지만 수십~수백 조원이 투입되는 AI 인프라 투자금을 특정 기업이 단독으로 조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정위는 주 위원장의 말이 대통령실 입장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제력 집중, 독과점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첨단 산업 투자 확대 방안을 검토하라는 게 대통령실 지시 사항”이라며 “금산 분리 완화를 아예 배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논의해 본 뒤 필요시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주 위원장은 또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100% 보유 의무를 50%로 낮춰 외부 자본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는 일부 기업의 “민원”으로 지칭하면서 “공정위가 특정 기업에 집중해 규제 완화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재계에서는 전략 산업이나 혁신 스타트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투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건의가 ‘특정 기업(SK그룹) 특혜’ 논란으로 번지며, 논의 자체가 무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20일 “금산 분리를 원하는 게 아니다”라며 “(대규모 AI 분야) 투자를 감당할 새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진화에 나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