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미국 달러 대비 가파르게 절하(환율은 상승)되고 있는 가운데, 원화가 유로화·위안화·스위스프랑화 등 여타 주요 통화에 비해서도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은 달러 수급 요인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12일 한국은행과 하나은행에 따르면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은 장중 1700원 선을 돌파, 2010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화 대비 환율은 이날 1830원 선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중국 위안화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달 중순 심리적 저항선인 ‘1위안=200원’을 돌파한 후 이날 205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하반기 들어 원화는 위안화 대비 8.6% 평가 절하됐다.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절하율보다도 크다.

세계적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스위스 프랑화나 유로화에 비해서도 6~7%씩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주요 통화 중엔 일본 엔화만 원화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엔화의 국제적 지위와 새 내각 출범에 따른 일시적 정치 요인 등을 감안할 때 이런 현상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명동 한 환전소에 주요 통화 환율이 표시된 모습./뉴시스

최근의 원화 약세는 개인들의 해외 투자 급증과 같은 수급적 요인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기저에 깔렸다는 분석도 있다.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0~1%대 성장률,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 급격한 인구 고령화, 과다한 가계부채, 생산성 정체 등이 원화 가치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진욱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화의 전방위적 약세는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중국 위안화 대비 원화의 가치 하락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11~2020년 평균 173원을 기록했던 원·위안 환율은 2022년 이후 현재까지 평균 190원대로 올라섰다. 지금은 200원마저 뚫은 상황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의 급격한 원·위안 환율 변화는 우리나라가 중국에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기술 경쟁력까지 따라잡히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지금의 환율이 고(高)환율이 아니라 ‘적정 환율’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