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1년 새 2.4% 오르며 1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고 국가데이터처가 4일 밝혔다. 한동안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치인 2% 안팎을 유지하던 물가 상승률은 쌀, 사과 등이 20% 넘게 뛰는 등 먹거리 물가가 고공 행진하면서 2%대 중반으로 올라섰다. 정부는 최장 열흘의 추석 연휴로 콘도·렌터카·단체 여행 상품 등 수요가 늘어난 일시적 현상으로 물가가 차츰 안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식료품·외식 등 먹거리와 월세 등 필수 품목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옷·가방·신발 구매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특히 정부가 6·27, 10·15 등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을 죄면서 전세난이 불거지고 이 여파로 서민·사회 초년생 생계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월세가 치솟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는 작년 같은 달보다 9.8% 올랐다. 1~10월 평균 월세 상승률은 10%에 달해 이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 폭을 보였다. 불어난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에게 월세를 높게 부르는 임대인도 늘고 있다.
◇주거비·식비·교통… 필수 생계비 비율 3개 분기 연속 증가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전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했을 때 연 환산 이율)은 4.26%로 6·19, 8·2 등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 규제가 강화된 직후인 2018년 1월(4.26%) 이후 7년 9개월 만에 가장 높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먹거리 물가와 함께 월세마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살림살이는 팍팍해지고 있다. 올해 2분기(4~6월) 세금·사회보험료·이자 등을 뺀 처분 가능 소득은 물가를 감안한 실질 소득 기준 0.5% 감소했다. 1분기 땐 2.3% 증가하다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 기간 처분 가능 소득 대비 월세를 포함한 주거비, 식비, 교통비 등 필수 생계비 비율은 38.5%로 작년 4분기부터 3개 분기 연속 증가했다. 그만큼 생필품이 아닌 품목 소비를 줄였다는 뜻이다.
제조업, 건설업 등 주력 업종 부진 여파에 1년 내내 청년 실업률이 악화하는 등 고용 사정마저 나빠지면서 사람들은 씀씀이를 본격적으로 줄이고 있다. 올해 3분기 15~29세 청년 실업률은 5.1%로 1년 새 0.2%포인트 상승했다. 작년 4분기부터 올해 3분기(5.1%)까지 4개 분기 연속으로 실업률이 악화됐다. 먹거리·월세 인상과 청년 취업난이라는 겹악재가 이어지면서 소비 회복세도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생 회복 소비 쿠폰 효과로 7월 2.7%(전월 대비) 늘어났던 소비도 8월(-2.4%), 9월(-0.1%) 두 달째 감소세다. 특히 옷과 신발·가방 등은 9월 들어 소비액이 줄었다.
이런 가운데 주식(主食)인 쌀과 주식 대용인 빵 등 필수 먹거리 가격까지 치솟아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졌다. 국가데이터처가 집계한 지난달 쌀 물가 상승률은 21.3%로 2019년 1월(21.8%) 이후 6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가을철 잦은 비로 벼 베기가 늦어지면서 햅쌀 출하가 지연됐기 때문이다. 빵도 6.6% 올라 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석유류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환율 상승 등 여파로 지난달 휘발유는 4.5%, 경유는 8.2% 올랐다. 석유류 가격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이달 1일부터 휘발유와 경유의 유류세 인하 폭을 각각 리터(L)당 25원, 29원 줄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