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투자, 생산 중심으로 한국 경제에 활력이 돌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 1.2%의 ‘깜짝’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반도체 중심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급증하고 생산이 늘어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소비 쿠폰으로 잠깐 살아난 민간 소비는 빠르게 힘을 잃으면서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건 결국 기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가 이끈 성장세
31일 국가데이터처의 ‘9월 산업 활동 동향’을 보면 반도체 경기 회복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달 기업들 설비 투자는 전월보다 12.7% 급증했다. 특히 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포함한 기계류 투자가 9.9% 늘었고, 선박·항공기 구입 같은 운송 장비 투자도 19.5%나 증가했다. 설비 투자란 기업이 공장을 짓거나 기계·장비를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지난달 반도체 생산도 전월 대비 19.6% 증가하며, 2023년 3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크게 늘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 설비를 대폭 늘리고 있는 영향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올해 6월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약 599억달러(약 85조 5000억원)로 지난해보다 19.6% 증가했다.
반도체 경기 회복은 침체하던 건설 투자에도 영향을 줬다. 반도체 공장 건설과 관련 인프라 공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건설 기성(시공한 실적)은 11.4% 늘면서 지난해 1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가장 크게 증가했다. 건설 기성은 공사가 실제로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두원 국가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반도체 산업이 좋아지면서 관련 공사 실적이 늘었다”고 말했다.
◇‘반짝’했던 소비 쿠폰 효과… “결국 기업이 살아나야”
앞서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3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은 1.2%를 기록한 것을 두고, 정부가 13조원이 넘는 소비 쿠폰을 뿌린 효과로 민간 소비가 살아난 덕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실제 3분기 민간 소비는 1.3% 증가했다. 하지만 이날 나온 9월 소매 판매 등을 갖고 들여다보면 소비 쿠폰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산업활동동향에서 소매 판매 추이를 보면 1인당 15만원의 1차 소비 쿠폰이 지급된 후 7월에는 전월보다 2.7%나 늘었지만, 8·9월에는 각각 2.4%, 0.1% 줄면서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3분기 전체 소매 판매는 2분기보다 0.7% 늘었지만, 이는 7월 효과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8·9월 연속으로 줄면서 소비는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정부의 일회성 지원책이 끝나자 원래의 부진했던 내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3분기 성장을 실제 떠받친 것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들의 투자, 생산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3분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3.5%로 2분기(72.5%)보다 1%포인트 높다. 지난해 평균 가동률(72.7%)보다도 높다.
한편 지난달 자동차 생산은 18.3% 급감했는데, 이는 8월 생산이 21.2%나 늘었던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두원 심의관은 “(자동차 생산은) 8월에 많이 늘어난 데 따른 기저 효과로 줄어든 것”이라며 “전체적으로는 자동차도 내수·수출 모두 나쁘지 않고 물량이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업 투자와 생산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올해 성장률이 1%대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당초 0.9% 전망에서 상향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아 낙관만 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중국의 경기 둔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기업 경쟁력 강화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소비 쿠폰 같은 일회성 정책은 단기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기업이 투자하고 생산하고 수출해야 경제가 성장하고, 그래야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늘어 소비도 자연스럽게 살아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