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7세인 김모씨는 최근 회사를 나와 은퇴한 직후 수입이 뚝 끊겼다. 국민연금은 만 63세부터 받을 수 있는데, 그때까지 남은 7년 동안 마땅한 소득원이 없어서다. 생활비는 물론, 예상치 못한 병원비까지 부담이 되기 시작하자 걱정이 앞섰다.
연금 공백기,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를 채워준 건 다름 아닌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였다. 다행히 퇴직 직전부터 조금씩 넣어두었던 IRP의 존재를 떠올린 김씨는 그 계좌에서 연금처럼 매달 일정 금액을 꺼내 쓸 수 있었다. 세금도 거의 붙지 않았다.
◇최대 1800만원까지 납입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층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은 만 52.8세이다. 국민연금 수령은 만 63세부터 시작된다. 10년 가까이 연금 공백기가 생기는 셈이다. 그 사이를 김씨처럼 IRP로 채울 수 있다.
IRP는 연금저축 계좌와 합산해 연간 최대 900만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은퇴 이후 소득이 줄어드는 시기에 IRP 계좌에 적립한 자금을 연금 형태로 인출해 안정적인 현금 흐름도 얻고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IRP 계좌를 활용해 연간 900만원까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데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900만원은 세액공제 한도일 뿐 납입 한도는 연간 1800만원인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즉 연금저축과 IRP 두 계좌를 합쳐 연간 1800만원까지 자유롭게 입금하고, 그중 9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때 900만원을 초과한 금액은 세액공제 적용이 안 돼도 나름의 세제상 이점이 있다.
◇세액공제 초과분도 주목
나머지 900만원에 대해서는 첫째로 과세이연 효과가 있다. 일반 금융 계좌에서는 이자나 배당 수익에 대해 15.4%의 세금이 즉시 붙는다. 반면 IRP 계좌에서는 이자배당평가이익 등 운용 수익에 대한 과세가 인출 시점까지 유예된다. 이 덕분에 당장 세금을 내지 않고 수익을 재투자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둘째는 고소득자에게 세율 구조가 유리하다. 일반 계좌는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15.4%의 세금이 원천징수된다. 또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종합과세 대상이 돼 누진세율 15.4~49.5%가 적용된다. 그런데 IRP 계좌는 55세 이후 연금 수령 시 세액공제 받지 않은 원금은 과세되지 않고 운용 수익에 대해서만 3.3~5.5%의 연금소득세가 부과된다.
금융소득이 많은 가입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실제 적용되는 세율은 연령과 수령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최대 46%포인트에 달하는 절세 효과를 볼 수 있다.
셋째로 IRP에서는 손실 통산이 가능하다. 일반 계좌에서는 손실이 발생해도 세법상 인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투자 손실은 인정하지 않되 이익에 대해서는 과세한다. 하지만 IRP는 손실과 이익을 통산해 계좌에 남아 있는 수익금을 과세한다. 따라서 수익이 나지 않은 해에는 자연스럽게 과세 대상이 줄어드는 절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분리과세 혜택을 확대할 수 있다. IRP에서 자금을 연금 형태로 수령할 경우, 세액공제 한도를 초과한 납입분(900만원)은 연간 연금소득 합산액 1500만원 산정 시 제외된다. 연금소득 합계액이 1500만원 이하이면 분리과세로 납세 의무가 종결되는데, 이때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원금과 해당 수익은 과세 대상이 아니므로 세금 부담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예를 들어 총 1800만원을 연금으로 받으면 그중 세액공제 받은 900만원에서 나온 연금만 1500만원에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1500만원 이하로 보이게 돼 분리과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분리과세를 선택할 때 여유분이 더 생기는 것이다.
◇분리과세 항상 최선은 아냐
연금소득이 있으면 종합과세나 분리과세 둘 중 한 가지 방식을 선택해 세금을 낸다. 한 해 연금소득이 1500만원을 넘기면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과세(6.6~49.5%)로 신고하거나, 연금소득만 따로 떼 16.5% 단일 세율로 세금을 낼 수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분리과세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소득과 합산하지 않고 고정된 세율로 과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점에 유의하자.
연금소득이 3000만원이고 연금 외 다른 소득이 없는 경우를 가정할 때 분리과세율 16.5%를 적용하면 세액은 495만원이다. 이때 종합과세를 선택하면 종합소득세액이 193만6000원으로 산출된다. 종합과세를 선택해 300만원 이상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연금소득이 3000만원이고 종합과세되는 전체 소득이 5000만원 이하라면 종합소득세율은 6.6~16.5% 수준이다. 이 경우 고정세율 16.5%가 적용되는 분리과세보다 종합과세 방식이 낫다.
다른 종합소득이 없을 때는 연금소득이 1500만원 이하일 때도 종합과세가 더 유리할 수 있다. 연금소득공제가 적용돼 과세표준이 줄고, 기본공제와 낮은 세율 구간(최저 6.6% 이하)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55세 이상 70세 미만 수령자 기준으로는 분리과세 최고세율(5.5%)보다 종합과세 실효세율이 더 낮아질 수 있다. 종합과세율이 6%로 적용될 때 분리과세로는 82만5000원을 내지만 종합과세로는 각종 공제가 적용돼 39만1600원을 낸다. 내야 할 세금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이다.